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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시즌 개막이나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컨디션입니다. 어떻게 페이스를 조절해 개막전에 최고의 상태를 맞추느냐에 온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거기에 노심초사합니다. 그래서 페이스가 이르게 올라왔다 싶으면 부러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인지라 기복이 있고 마냥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승부는 본고사이지 예비고사가 아닌 까닭이기도 합니다.
시범경기서 박찬호가 연일 호투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서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열린 샌디에이고전서 선발 등판해 5이닝 1피안타 비자책 1실점 등 4경기(선발 2번, 불펜 2번)서 12이닝 무자책점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1994년 데뷔 후 가장 좋은 페이스입니다.
처지가 박찬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시범경기 성적에 따라 메이저리그 합류가 결정 나는 초청선수 신분에 불과합니다. 컨디션 조절이고, 자시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첫 선발 등판이었던 10일 볼티모어전서 3이닝 퍼펙트 투구를 했는데 그날은 다저스가 스프링캠프서 처음으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선수들을 컷오프한 날이었습니다.
샌디에이고전서 박찬호의 모습은 마치 플레이오프 마운드에 오른 선수 같았습니다. 공을 던진 후엔 마운드를 벗어나기 일쑤였고, 인터벌도 포수에게 공을 받자마자 바로 셋 포지션에 들어가는 상대 투수와 달리 길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일구일심(一球一心)이었습니다.
피칭 내용은 올시즌 예고편이라 할만 했습니다. 커브와 슬러브 등 기존 변화구에 샌디에이고 마무리 트레버 호프먼에게 그립을 배웠다는 스트레이트 체인지업을 집중적으로 구사하며 ‘기교파’로의 완전 변신을 보여줬습니다.
성미 급한 다저스 팬들은 역시 시범경기서 호투하고 있는 연봉 700만 달러의 에스테반 로아이자를 트레이드시켜 좋은 타자를 데려오고 대신 50만 달러에 불과한 박찬호를 5선발로 쓰라고 아우성입니다. 조 토리 다저스 감독도 “기분 좋다. 볼티모어 전 때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이 시점에선 5선발로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 고민스럽다”고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박찬호가 다저스에 연연할 게 아니라 자유계약선수로 선발 투수가 펑크 난 다른 팀을 찾는 게 더 낫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파심이 듭니다. 박찬호 본인이야 안 그러겠지만 주위에서 일찍 샴페인 뚜껑을 따고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찬호의 시범경기 성적은 시범경기에 불과합니다. 내용도 그렇습니다. 볼티모어를 빼면 상대 뉴욕 메츠와 샌디에이고는 고작 빅리거 2~3명이 출전한 사실상 마이너리그 팀들이었습니다.
또한 박찬호가 호투할 수 있었던 키워드는 변화구였습니다. 겨우내 ‘죽은’ 볼만 치다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옆으로 휘어져나가는 변화구는 타자들에게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시범경기 결과는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시즌에 들어가서도 잘 던지고, 못 쳤다고 못 치란 법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투수나 타자 공히 스파링의 탐색전일 따름입니다.
박찬호도 그랬습니다. 지난 2000년 시범경기서 안 좋았지만 정작 그 해 18승으로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 지난해 탬파베이 서재응은 동료들로부터 사이영상 후보라는 추앙을 받을 정도였으나 정작 시즌에 들어가자 나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박찬호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입니다. 팀마다 선수들이 추려져 정예 엔트리로 나오고, 페이스도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는 앞으로 등판이 메이저리그 컴백을 가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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