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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유숙기자]스크린에서 카리스마 가득한 눈빛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던 배우 정진영이 곱슬머리에 후줄근한 옷차림의 치킨집 사장으로 돌아왔다. 발달 장애아인 아들 ‘동구’를 옆에 끼고서.
25일 인터뷰를 위해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정진영은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만나던 날카로운 눈매가 아닌 ‘동구 아빠’의 편안한 눈빛이었다.
◇ “아들이 좋아하는 영화라 더 특별해”
정진영은 영화 ‘날아라 허동구’의 동구 아빠 진규 역할에 대해 “별 준비 안했다. 연기할게 많지 않은, 오히려 연기 많이 하면 안 되는 배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닭 튀기고 애 재우는 등 스크린에서 동구 아빠로 존재해야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한 아이의 아버지니까.
정진영은 영화가 처음 공개된 언론 시사회에 초등학생 아들을 데려 왔다. 배우로 많은 작품에 출연한 정진영이지만 극장에 아들을 데려와 보여준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배우인데 한번도 극장에서 아버지 나오는 영화를 못 봤다는 것이 우습지 않나”라며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배우 일을 시작했는데 이 영화를 아들이 좋아하고 친구들도 많이 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아주 특별하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진영은 현재 촬영 중인 이준익 감독의 영화 ‘즐거운 인생’이 마무리 되면 몇 달 간 ‘아버지’로 돌아간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아버지만의 역할이 많아진다고.
그는 “애가 더 커지면 같이 놀기 싫어할 거다. 그 전에 프로 축구도 보러가고 바둑도 두고 캠핑도 가고 배낭여행도 가고 싶다. 앞으로 4년 정도는 같이 신나게 놀아줄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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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묻혀지면 안 된다”
“‘왕의 남자’는 찍는 과정에서 노출도 많이 되고 기대치도 있었다. 이준기 신드롬도 크게 작용했고…. 그런데 이 영화는 규모있는 영화도 아니여서 일반관객들은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고..,시사회 때 기자들도 기대 많이 안 하고 온 것 같다.”
정진영의 이 말에 뜨끔했다. 솔직히 '날아라 허동구'에 큰 기대를 안했다. ‘그 영화 어떻다더라’ 하는 소문도 못 들었다. 하지만 시사회 후 정진영이 시트콤까지 출연하며 열심히 영화 알리기에 나선 이유를 알았다.
‘파격, 충격’이란 말을 좋아하는 시대에 군더더기 없고 꾸밈이 없는 영화가 등장해 더욱 좋았다. 정진영은 이를 “장치 없고, 어깨 힘 안 들어가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사회나 영화 관계자들 반응이 좋아서 고무되긴 했지만 철저하게 입소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며 “애초에 흥행은 기대도 안했다. ‘제대로 만들어질까’, ‘극장 개봉이나 할까’ 하는 걱정도 됐다"고 '달려라 허동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정진영은 또한 "작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시사회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도 극장에 못 걸리거나, 상영이 되도 한 주 지나 바로 내려지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허동구'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묻혀지면 이런 영화 또 안 만들어진다”는 말로 '작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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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은 이어 “공교롭게도 ‘왕의 남자’가 4,000만 인구 중 1,000만 명이 넘게 봤는데 그런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지만 영화의 건강성을 위해 규모나 내용에서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진영은 한국영화 위기론에 대해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다. 어려운 일은 좋은 길로 가기 위한 경로라고 생각한다”며 “위기라고 영화 안 만드는 거 아니고 스크린 쿼터 줄었다고 삐쳐서 영화 안 만들 거 아니지 않나. 더 힘 있고 개성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잘 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