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개봉을 앞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열두 살의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 분)과 해성(유태오 분)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넘버3’ 송능한 감독의 딸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장편 데뷔작이다.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와 한국인 배우 유태오, 미국 배우 존 마가로가 각각 나영과 해성, 미국인 남편 아서 역을 맡아 애틋한 서사를 이끈다. 셀린 송 감독은 이 입봉작으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미국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작품상과 감독상, 고담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영화는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던 나영과 해성이 나영의 이민으로 헤어지는 장면들로 시작한다. 그로부터 12년 뒤 SNS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연락을 이어가다 이별을 겪고, 이후 12년이 또 흘러서야 해성이 미국인 아서(존 마가로 분)와 결혼한 나영을 보러 뉴욕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꿈같은 추억들을 그린다. 실제 12세까지 한국에 살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셀린 송 감독 본인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셀린 송 감독이 한국에서 놀러온 어린 시절 친구를 남편과 함께 뉴욕에서 만났을 당시,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의 말을 통역해줬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셀린 송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를 되돌아본 당시의 경험과 정서를 한국적인 개념 ‘인연’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30대의 신인 감독이 쓴 각본이라고 믿기 어렵게, 내공과 성찰을 담은 명대사들이 아련함을 더한다. 해성과 나영이 바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은 둘이 나눈 모든 대화가 명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연의 여운을 엔딩크레딧까지 이끌 수 있던 뒷심은 각본에서 나왔다.
아쉬운 건 배우들의 한국어다. 유태오는 운명에 갇혀 꾹꾹 누른 해성의 그리움과 한을 15년 무명생활을 견뎠던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비춰 깊이 있게 표현했다. 다만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역할이 무색하게, 어딘가 어설픈 그의 한국말이 훌륭한 눈빛과 감정선을 반감시킨다. 그레타 리의 한국말도 어색하다. 실제 한국인 관객들이 듣기엔 묘하게 낯선 한국어 대사톤으로 호불호를 낳을 수 있다. 다행인 건 그 외 두 사람의 아련한 케미, 존 마가로와 함께한 전반적인 앙상블은 조화롭다. 가수 장기하의 뜻밖의 깜짝 출연이 반가움을 더한다.
3월 6일 개봉. 셀린 송 감독.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