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 이하 ‘천박사’)로 추석 관객들을 만나는 배우 강동원이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말이다. 2003년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로 혜성처럼 등장한 후 데뷔 20주년. ‘동안’과 ‘비주얼’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강동원도 ‘연륜’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강동원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취재진을 만나 당시 어록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액션과 코미디 장르가 갖는 철학, 소중한 기회로 만난 ‘천박사’가 차지할 의미도 솔직담백히 털어놨다.
지난 19일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베일을 벗은 ‘천박사’ 강동원의 미모는 여전했다.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과 춤을 추듯 유려한 액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강동원은 98분 내내 관객들을 웃기고 압도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새로운 얼굴들도 발견됐다. 다양한 눈빛과 표정들로 촘촘히 감정의 레이어를 쌓아올려 전작 ‘전우치’(2009), ‘검사외전’(2016)에선 볼 수 없던 ‘천박사’만의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구축했다.
‘천박사’는 추석 연휴 전날인 27일 하정우 임시완 주연 ‘1947 보스톤’, 송강호 주연 ‘거미집’과 동시에 개봉해 정면 승부를 펼친다. 24일 기준 ‘천박사’의 예매율이 30.6%(9만 7030명) 압도적 수치로 전체 1위를 기록 중이다. ‘1947 보스톤’과 ‘거미집’이 뒤를 이어 각각 2, 3위를 엎치락 뒤치락 경쟁 중인 상황.
강동원은 “예매율 성적이 나쁘진 않은데 개봉주가 되어봐야 반응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됐으면 바라는 마음”이라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임필성 감독의 소개로 제작사 외유내강의 수장인 류승완 감독을 만나 ‘천박사’의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강동원은 “임필성 감독이 기여해주신 역할이 크다”며 “평소 제가 오컬트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 시나리오좀 읽어봐라’ 하시더라.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액션도 많아서 좋았다”고 회상했다.
‘천박사’는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조감독으로 활동했던 김성식 감독의 장편 입봉작이다. 강동원은 이전에도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 등 신인감독들과의 시너지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거장이나 흥행 감독의 연출작이 아니더라도 시나리오의 내용이 재미있으면 믿고 출연하는 그의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이 반영된 것. 강동원은 “김성식 감독님은 신인이지만 조감독을 오래 하셨고, 연출부로 일할 때에도 평판이 워낙 좋아 함께 하는데 큰 고민이 없었다”며 “지금은 신인감독이 나보다 어린 경우가 많지만, 거의 또래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함께 일하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 구조가 좋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있거나, 명확한 메시지, 새로운 그림이 있다면 출연하는 편”이라며 “또 워낙 판타지 장르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만화방에 가서 판타지 만화책도 많이 읽었다”고 덧붙였다.
강동원이 연기한 ‘천박사’ 캐릭터는 대대로 영험한 당주집의 장손이지만, 정작 본인은 귀신을 믿지 않는 가짜 퇴마사다. 영화는 ‘천박사’가 귀신 보는 ‘유경’(이솜 분)을 만나 악귀 ‘범천’(허준호 분)과의 지독한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는 과정을 다룬다. 천박사는 신력이 없지만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타고난 통찰력으로, ‘퇴마’가 일종의 심리 치료라는 신념으로 퇴마 연구소를 운영하는 인물. 퇴마 심리 치료(?)에 신빙성을 가미하기 위한 기술직 파트너 인배(이동휘 분)와 유튜브 ‘하늘천tv’를 운영하고 전국 팔도를 돌며 퇴마 의뢰를 받아 돈을 번다.
강동원은 “극 중 천박사의 헤어스타일은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며 “무속인분들이 굿을 하고 점을 보는 영상들을 찾아보며 연기적으로 참고했다. 특히 그 분들이 고객들에게 호통을 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재미있어보이더라. 그런 인상깊은 것들을 발췌해 초반의 코믹한 요소들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 중반부터 장르적 변화가 있는 만큼 초반에 재미있는 장면들로 관객들을 즐겁ㅈ게 해드리고 싶었다”며 “원래 시나리오상에 개그적 요소들이 좀 더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덜어냈다”고도 귀띔했다.
‘천박사’의 기자간담회 당시 화제를 모았던 자신의 ‘연륜’ 발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강동원은 “아저씨의 느낌이 난다기보다는 그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며 “나이가 들었으니 좀 더 아저씨같은 캐릭터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동안 외모에 대해선 “정작 자신은 동안인지 잘 모르겠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것 같다”면서도, “비연예인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확실히 내가 어려보이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화계에 계신 분들이 전반적으로 어려보이시는 것 같아 그런지 내가 그렇게까지 동안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겸손을 드러냈다.
외모 칭찬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전했다. 강동원은 “자주라기보단 가끔 그런 소리를 듣지만 어쨌든 들을 때마다 기분 좋은 칭찬인 것 같다”며 “외모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 같은 것도 딱히 없다”고 말했다.
강동원은 그간 ‘형사 Duelist’,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 ‘마스터’, ‘반도’ 등 다양한 액션 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천박사’에서도 신검을 휘두르는 장면부터 귀신에 씌인 빙의자들에게 흠씬 두드려 맞는 등 다양한 액션신이 등장한다. 강동원은 “이번 작품에선 특별히 힘들었거나 따로 준비한 건 없지만 10여년 만에 앞구르기와 뒷구르기 운동을 다시 했다”며 “찍을 때마다 몸이 힘들지만, 그래도 액션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액션 장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능청스러운 캐릭터를 맡아 코미디에 도전했을 때 생기는 대중적 시너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강동원은 “실제 코미디를 좋아한다. 코미디 촬영장에 있을 때 즐거워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힘들다는 느낌도 잘 없다”며 “실제 성격에도 ‘천박사’나 ‘전우치’처럼 능청스럽고 개구진 구석이 있다. 내가 연기해온 모든 캐릭터에 실제 나와 비슷한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능청스러운 캐릭터로)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보니 잘 될 땐 ‘아 잘되나 보다’ 싶지만, 그런 캐릭터들이 실제 전부 흥행한 것은 아니다. ‘전우치’만 해도 방송으로 영화를 봐주신 분들이 많았지만, 극장에선 ‘아바타’랑 대결해 제작비 대비 그리 흥행하진 못했다”고도 털어놨다.
‘천박사’의 시즌2를 향한 솔직한 생각도 전했다. 강동원은 “이번엔 강도령(이동휘 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보는 게 어떨까”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즌2는 관객들이 선택해주셔야 하니 개봉을 해봐야 알지 않을까. 관객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원한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배우이자 사람으로서 지키려는 철칙은 ‘즐기자’라고.
“즐겁게 일하자, 남을 힘들게 만들면서까지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분위기 메이커가 되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편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려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일중독자인지도 잘 모르겠다. 일 하는 게 즐겁기 때문에 굳이 쉴 이유도 없고, 번아웃도 딱히 없다.”
한편 ‘천박사’는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추석 연휴 전날인 오는 2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