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단을 운영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선수들의 ‘학교폭력’ 논란에 대한 생각을 이 같이 밝혔다.
프로배구가 일부 선수들이 학창시절 휘둘렀던 ‘폭력’이 드러나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여자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다영 자매와 남자배구 OK저축은행 송명근, 심경섭이 학창시절 폭력을 휘두른 사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한 피해자의 폭로로 드러났다. 선수들은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라는 구단 징계도 나왔다.
그럼에도 파장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학폭 논란’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코트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선수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과거 ‘미투’, ‘빚투’ 때처럼 ‘학폭 피해’ 고발이 줄줄이 이어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폭투 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황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체육 분야는 그동안 국민에게 많은 자긍심을 심어줬지만 그늘 속에선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제기돼 왔다”면서 “이런 문제가 근절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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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도 기업이 막대한 돈을 들여 프로팀을 운영하는 가장 큰 목적은 홍보효과다. 이를 통해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쌓는다. 그런데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되면 당초의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로팀 운영을 안 하느니만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팀이 있는 대기업 A사 측은 “프로 스포츠가 회사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나쁜 일이 발생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브랜드 이미지 실추에 더해 직원들의 사기나 자존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선수들과 팀 관리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프로 스포츠의 기업 홍보 효과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로 스포츠 한 관계자는 “SK그룹이 잘 운영하던 프로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갑자기 매각한 배경에 지난해 일어난 2군 선수들의 무면허 음주운전 및 폭행 은폐 사건이 한몫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그 사건 이후 그룹 내부에서 ‘프로야구단 운영보다 차라리 자선사업을 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단 히어로즈의 네이밍 스폰서를 맡고 있는 키움증권도 지난해 허민 이사회 의장의 ‘갑질논란’이 불거지자 몸살을 앓았다. 구단을 직접 운영하는 주체가 아님에도 부정적인 이슈마다 ‘키움’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녔다. 키움증권은 히어로즈 팀명을 사용하는 대가로 1년에 100억원씩 5년간 총 500억원을 지원한다.
프로 스포츠계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질수록 기업 입장에선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할 이유가 사라진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의 근간이었던 삼성조차 스포츠 분야에서 하나 둘씩 발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14년 프로축구 수원 삼성과 남녀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용인 삼성생명 등을 자회사인 제일기획으로 넘긴 데 이어 2015년에는 프로배구 삼성화재와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던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까지 이관시키면서다. 이들 구단들이 제일기획으로 넘어간 뒤 모기업 지원금은 한창 때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프로배구는 2012년 승부조작 파문으로 심한 홍역을 앓았고 현역 선수가 11명이나 영구제명 당했다”며 “그 사건 이후 배구계는 심각한 침체를 겪었고 팬들의 사랑을 되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경영 환경이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프로 스포츠에서 안좋은 일들이 반복된다면 기업 입장에선 팀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며 “스포츠계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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