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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오나이다의 손베리 크리크(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총상금 200만 달러) 최종 4라운드. 김세영(25)은 마지막 18번홀에서 파를 기록한 뒤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합계 31언더파 257타를 적어낸 김세영은 LPGA 투어 역대 최소타, 최다언더파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5월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 이후 1년 2개월 만의 우승이자 LPGA 통산 7승째다. 또 이번 우승은 2004년 카렌 스터플스(미국)의 258타(22언더파)를 1타 경신한 역대 최소타 그리고 2001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에서 작성한 27언더파를 4타 경신한 최다 언더파 우승 기록이다.
약 2시간 뒤 트로피를 안고 숙소로 돌아온 김세영은 여전히 흥분해 있었다. 이데일리와 전화 통화에서 “오늘 정말 파이어한 날이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파이어’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하나도 남김없이 하얗게 붙태웠음을 의미한다. 또 일이 잘 됐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첫날부터 느낌이 좋았다. 버디만 9개 골라내며 9언더파를 쳤다. 예전 같았으면 좋은 성적을 거둬 들떴을지 모른다. 그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번 만큼은 들뜨지 않으려고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그는 “침착하려고 했고, 들뜨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내 자신을 자제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골프가 잘 될 때 스스로 들뜨는 경향이 있다. 그로인해 생각지 못한 실수를 하면서 우승을 놓쳤던 일이 많았다.
지난 6월이다.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우승 기회를 잡았다. 2라운드에서 코스레코드(10언더파 61타)를 치며 단독 선두를 달려 시즌 첫 승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최종일 재미교포 애니 박(미국)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준우승도 내주면서 이날 공동 4위에 그쳤다. 김세영은 “마지막 홀에서는 세컨드 샷에서 생크를 냈을 정도로 내 자신을 절제하지 못했다”며 “그날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순간 ‘내가 원하는 경기는 이게 아니다. 내가 이거 밖에 안 되는 선수였나’라고 생각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날의 실수는 김세영이 잠시 잊고 있던 초심을 꺼내는 계기가 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난 뒤 잠시 방향을 잃었던 것도 부진으로 이어졌다. 2015년 LPGA 투어 진출 이후 오로지 올림픽 출전을 목표를 달렸다. 마침내 출전권을 획득하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김세영은 “올림픽 출전이라는 큰 목표를 이룬 뒤 새로운 목표에 대한 마음가짐이 느슨해진 것 같다”면서 “기술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한 멘탈의 문제였다”고 자신을 꼬집었다.
우승의 기회를 놓칠 때마다 밀려오는 좌절감은 더 커졌다. 충분히 해낼 수 있었던 상황에서 어이 없는 실수와 스스로 무너지는 멘탈에 실망했다. 누구보다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올해 조금 더 그런 일이 많아졌다. 김세영은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서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할 때마다 ‘이렇게 흐지부지하려고 미국에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각오를 더욱 단단히 했던 게 오늘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힘든 시간을 돌아봤다.
오랜 침묵 끝에 나온 우승이라 더 기뻤다. 2015년 데뷔 첫 해 3승, 2016년 2승 그리고 지난해 1승을 거뒀다. 그러나 6승 이후 우승에 가까이 갔다가 번번이 좌절을 맛보는 일이 많아졌다. 1년 2개월 동안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자신을 향한 실망감은 더 커졌다. 김세영은 “이번 우승은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나약함’을 이겨낸 우승”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LPGA 투어의 역사를 새로 쓴 김세영은 “꿈이 이루어졌다”며 “인생 최고의 경기를 펼쳤고 우승까지 하게 돼 더 없이 기쁘다”고 감격스러웠던 하루를 다시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