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다뤄지는 테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특히 그렇다. 최근의 몇몇 작품들은 ‘진짜 사랑’, 그 가치에 대해서 끈질기게 파고들어 질문을 던진다.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장편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13일 언론에 첫 공개됐다. 이 영화도 사랑을 얘기한다. 유부남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 영희가 다 내려놓고 홀로 훌쩍 여행을 떠나 겪은 일을 그린,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1,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독일 여행, 2부는 강릉 여행으로 흘러간다. 영희는 독일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며 지나간 사랑에 미련을 두지 않고 삶의 의지를 다지지만 외로움을 떨칠 수 없다. 강릉에선 “가짜(사랑)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랑하고 받을 자격이 없다“며 사랑에 가치를 두지만 자신의 사랑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불륜이기에 삶과 양립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영희는 독일과 강릉, 삶과 사랑,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그 사이에 불안하게 걸쳐져 있다. 영희가 “사랑을 못 하니까 삶에 집착하는 거다. 그거라도 얻으려고”라며 명수(정재영 분)에게 꾸짓듯이 쏟아내는 말은 곧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진짜 사랑’에 대한 담론은 홍상수 감독의 전작인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이어진다. 영수(김주혁 분)는 “진짜 사랑하는 것, 사랑만이 가치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사랑하다가 죽고 싶다. 원하는 건 그게 다다. 나머지들은 겁쟁이들의 보상 행위다. 진짜를 버린 대가로 얻은 보상이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그들의 사랑은 ‘진짜’라고 설득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홍상수 감독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특유의 문법을 썼다. 영희의 취중진담을 통해 거짓과 위선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드러내고 영희의 꿈을 통해 무의식에 내재된 그녀의 욕망을 보여준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자전적인 것 같은 이야기에 여느 작품보다 더 몰입된다. 여기엔 홍상수 감독의 뮤즈이자 연인인 김민희의 유연한 연기가 한 몫을 했다. 김민희는 영희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쏟아내며 극에 생기가 돌게 했다. 김민희는 이 작품으로 국내 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해외에서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했지만 국내 관객들의 평가는 그것과 별개다. 홍상수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하지만 관객들은 두 사람의 사생활과 연결지어 영화를 보고 있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공표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이제 관객의 판단에 달렸다. 청소년 관람불가. 오는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