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경우의 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가짓수를 뜻한다. 대한민국 축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월드컵, 올림픽 등 국제 대회만 가면 ‘승리의 여신’이 장난치는 듯 언제나 골머리를 썩였다. 그래서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라는 얘기가 입버릇처럼 터져 나왔다.
모처럼 골프 경기에서도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됐다. 바로 10월 6일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프레지던츠컵 얘기다. 미국과 인터내셔널팀의 골프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은 각각 12명의 선수가 출전, 팀의 명예를 걸고 붙는다.
10명은 세계랭킹에 따라 정해진다. 2명은 각 팀의 단장 추천으로 결정된다. 전례를 보면 랭킹 차점자들이 선발되기도 하고, 실력과 흥행을 고려해 의외의 인물이 뽑힐 때도 있다. 미국팀 단장 제이 하스와 인터내셔널팀 단장 닉 프라이스는 추천 선수 2명을 지명하고 최종 명단을 발표한다. 혹시모를 잡음을 차단하기 위해 선수 지명 과정을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가진다.
경우의 수 하나. 배상문의 선발 여부다. 프레지던츠컵 흥행을 위해 개최국 선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자동 출전 랭킹에 한국 선수 이름은 없다. 배상문은 지난주 열린 PGA 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바클레이스에서 공동 6위로 선전했다. 당시 그는 “프라이스 단장이 나를 뽑아줄지 아직 모르지만 그가 지금 TV를 보고 있기를 바란다”며 “조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에서 플레이하기를 바란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배상문은 절박하다. 올 초 병역법 위반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법정 공방까지 벌였지만 패소했고, 시즌 후 입대를 결정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여론을 달랠 ‘명예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개 숙이지 않고 입국장에 들어올 절호의 기회가 바로 프레지던츠컵이다. PGA 투어도 배상문을 응원하고 있다.
프레지던츠컵은 친선 경기의 의미를 뛰어넘어 자존심 대결이다. 특히 우승이 단 한 차례에 불과한 인터내셔널 팀 입장에서는 추천 선수가 승패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프라이스 단장은 “올해는 물러서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친 상황이다. 배상문은 올 시즌 개막전에 우승했고, 톱10에도 다섯 차례나 들었다. 실력은 이미 검증된 선수. 프라이스가 그를 뽑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경우의 수 둘. 타이거 우즈는 미국팀의 ‘계륵’이다. 슬럼프로 경기력은 의심이 가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흥행보증수표다. 우즈 역시 포인트 부족으로 프레지던츠컵 자력 출전은 힘들다. 하지만 단장 지명은 남아 있다. 하스가 우즈를 내칠 수도 있지만 흥행을 위해 좋은 그림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팬들은 우즈를 절대적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메이저챔피언 조던 스피스에 베테랑 짐 퓨릭까지. 미국팀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인터내셔널팀을 압도한다. 역대 전전 8승 1무 1패가 말해주듯 이번 대회 역시 싱거운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는 포볼, 포섬 매치가 1경기씩 줄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최대 사흘 동안은 특정 선수를 쉬게 할 수 있다. 우즈를 한국행 비행기에 태우는 게 우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는다는 뜻이다.
프레지던츠컵은 ‘귀족 스포츠’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명예의장인 박근혜 대통령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침체된 국내 남자골프에도 활력소가 될 수 있다. 흥행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적지 않다.
한국시간으로 9일 아침 6시. 전 세계 10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빅 이벤트에 참가할 24명의 주인공이 발표된다. 양 팀 단장의 입에서 배상문과 우즈의 이름이 불리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