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블로그] 양준혁·안경현 해설이 환영받는 이유

정철우 기자I 2011.04.11 08:09:02
▲ 양준혁, 안경현 해설위원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한때 한국 프로야구에서 ‘해설’하면 하일성(KBS) 허구연(MBC)만을 연상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이 생겨나며 이런 분위기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이젠 전구장 중계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만큼 해설위원의 수요가 늘었고 스타일은 더욱 다양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설위원은 경력이 매우 중요했다. 현역시절 명성도 있어야 했지만 지도자로 어디까지 올라갔느냐도 빼 놓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때문에 감독 출신들이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았고 코치급이 뒤를 이었다.

감독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출연료에도 차이가 많이 났다. 그때만해도 그냥 그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최근 이같은 분위기에 변화가 생겼다. 특히 올해엔 지난해까지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뛰던 해설자가 두명이나 등장했다. 양준혁 안경현(SBS) 해설위원이 주인공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경륜이 부족한 탓에 깊이 있는 해설이 어려울 것”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뒷담화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아직 많은 경기를 맡진 않았지만 두어번의 방송만으로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야구관련 커뮤니티에는 이들의 해설이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강점은 가장 최근까지 그라운드에서 뛴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류현진(한화)이나 김광현(SK) 윤석민(KIA) 등 현역 최고 투수들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무기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김광현의 슬라이더에는 왜 그리 헛스윙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상대 타자 입장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호감 포인트다. 막연히 “치기 어려운 공”이라는 수식을 떠나 직접 체험해 본 아찔함을 들려줄 때 팬들은 환호하고 있다.

팬들이 해설위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팬들은 그들을 통해 그들이 보지 못하고 겪어 보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듣길 원한다.

결국 해설위원들이 보다 많이 뛰고 듣고 준비할 때 인정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양준혁과 안경현 위원은 취재에도 열심이다. 가장 먼저 운동장에 나와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현역 시절 경기를 앞두고 후배들과 정보를 공유할 때 처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얻은 정보가 팬들에게 전달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또 한명의 인기 해설위원인 이효봉 MBC SPORTS+ 해설위원의 가장 큰 무기도 바로 취재다. 이 위원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덕아웃 곳곳을 누비며 대상 선수를 찾아가 묻고 확인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구종과 타격폼이 전부가 아니다. 최근 심리 상태를 꼼꼼히 살핀다. 그가 다음 공에 대한 예측에 뛰어난 것은 단순히 야구를 많이 알아서가 아니다. 경기 전 투수와 타자의 가장 최근 심리상태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도자로서 경력이 일천한 이들의 선전은 우리나라 야구 방송, 특히 해설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말한 것 처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 해설위원은 전직 감독들이 잠깐 머물다 떠나는 자리 정도로 인식됐었다. 때문에 그 중 적지 않은 전직 감독들은 해설위원이라는 자리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경기 전 훈련 때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감독이나 코치 몇 명과 인사를 나누고는 중계 부스로 올라가 버리곤 했다. 야구를 설명해주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기엔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잘해야 ‘구수하다’. ‘듣기 편하다’ 정도의 평가를 넘지 못했다. 간혹 작은 실수나 나와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것 만 이야기해줘서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 그래서 너무도 궁금했던 덕아웃 뒤편, 그리고 선수들의 마음을 전해줘야 인정받을 수 있다.

야구팬의 눈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어지간한 지식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공부하고 취재하는 해설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시쳇말로 ‘구라’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것이 현재 해설자들의 상황이다.

방송사 역시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해설위원’이라는 직함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해설위원이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방송의 품격도 함께 올라간다.

순위 싸움 못지않게 시청률 0.1%를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투자하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사람과 방송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쉽게 생각했다간 언제든 낙오할 수 있다. 그렇게 모두가 노력할 때 한국 프로야구는 또 한걸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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