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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볼래, '터미네이터' 볼래...''멀티'플렉스의 실상, 나 참~'

최은영 기자I 2009.06.03 08:11:47

독과점 심각...'마더' '터미네이터4', 스크린 75% 장악

▲ '마더'(사진 왼쪽)와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30대 초반 직장인 A씨는 최근 극장을 찾았다가 두 차례나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터미네이터4'와 '마더'는 지난 달 21일과 28일, 개봉일에 맞춰 일찌감치 보고 난 후였다. 평일 퇴근 이후 머리나 식힐 겸 찾은 극장에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극장, 그것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영화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볼 수 있는 영화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옳다. 롯데시네마 OO점에선 총 10개 스크린 가운데 8개관에서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4')을 상영하고 있었다. CJ CGV XX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번엔 '마더' 일색이다. 나머지 영화라고 해야 '천사와 악마' '7급 공무원' '김씨표류기' 등 세 네 편이 고작인데, 그것도 단 1개 스크린에서만 상영을 하다보니 금세 매진. '멀티'플렉스의 이름값 못하는 현실에 A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국내외 대작들의 잇단 대규모 개봉으로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일부 관객들도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최근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은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 ''마더' 볼래, '터미네이터4' 볼래'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보다 다양한 영화를 관람하길 원하는 관객들의 기본권은 철저히 박탈당하고 있다.

최근 '터미네이터4'와 '마더'의 놀라운 흥행세가 극장가에서 연일 화제다. '터미네이터4'는 개봉 12일만인 지난 1일 300만 관객을 가볍게 넘겼고, '마더'는 개봉 첫 주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터미네이너4'와 '마더'의 흥행은 일면 '당연한' 측면이 적지 않다. 국내 영화배급의 1, 2위를 다투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각각 자사 연관 멀티플렉스인 CJ CGV와 롯데시네마를 통해 '마더'와 '터미네이터4'를 적극 밀고 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4'는 전국 793개(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스크린에서 개봉돼 2주차에 716개, 3주차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60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다. 한 주 뒤 선보여진 '마더'도 전국 765개 스크린에서 대규모 개봉, 향후 1~2주 정도는 상영관 수에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터미네이터4'와 '마더'가 맞붙은 5월 마지막주엔 전국 1480여 스크린에서 두 영화가 상영됐다. 이는 국내 전체 스크린수 2000여개의 약 4분의 3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름방학을 겨냥해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질 때면 어김없이 매번 유사 논란이 고개를 들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 피해를 보는 것은 이른바 메이저 배급망을 갖지 못한 중소 영화들과 비주류 영화들이다. 실제 지난 달 14일 개봉됐던 '싸이보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일부 극장에서 교차 상영되는 설움을 겪자 "차라리 개봉을 않는 게 낫다"며 대형 배급사의 횡포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다.
 
'싸이보그 그녀'와 같은날 개봉한 한국영화 '김씨표류기'도 대형배급사의 횡포에 적지 않은 피해를 봐야 했다. '김씨표류기'는 개봉전 시사회를 통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형성됐지만 확보 가능했던 개봉관 수는 300여개 남짓에 불과했다.   

'김씨표류기'를 제작한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감독은 "국내 대형 배급사들이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스크린 독과점 형태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스크린은 많아졌지만 볼 수 있는 영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영화가 문화상품의 하나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독과점은 관객을 위한 것도, 영화산업 전체를 위하는 일도 아니다. 단지 대기업 계열의 몇몇 유력 영화투자배급사들의 배만을 불려줄 뿐이다.

‘마더’와 ‘터미네이터4’의 흥행이 세간의 관심을 자극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작용을 한다는 측면에선 일면 축하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두 영화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다고 해서 한국영화 전체의 수익구조가 개선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영화의 도를 넘어선 독과점이 관객들과 여타 좋은 영화들 사이 만남의 기회를 빼앗고, 더 나아가 한국 영화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한다면 분명 경계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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