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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의 대결→탐욕의 인간군상…'서울의 봄' 영리한 현대사의 재구성

김보영 기자I 2023.12.08 06:00:00

알지만 모르는 그날 밤 진실…전연령 흥미 자극 성공
악역 미화 피해 시나리오 수정…다양한 인간군상 표현
실명 대신 가상인물로 완전 각색…캐릭터성 강화

(왼쪽부터)영화 ‘서울의 봄’ 전두광 역 황정민, 이태신 역 정우성 캐릭터 포스터.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지난 달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2주 만에 손익분기점(460만 명)과 함께 500만 돌파의 벽을 깼다. 천만까지 앞으로 절반. ‘범죄도시3’에 이어 2023년 두 번째 천만 영화 등극에 한 발 짝 더 가까워졌다. ‘서울의 봄’은 코미디와 강렬한 액션, 화려한 CG 등 스트레스 해소에 중점을 뒀던 기존 흥행작들과 정반대의 인기 비결로 주목받았다. 영화 속 답답하고 부조리한 상황들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본 관객들이 남긴 스트레스와 분노 섞인 생생한 후기가 관람 욕구를 부추기는 것.

‘서울의 봄’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 1979년 12.12 군사 반란의 비극을 다뤄 일찌감치 주목받았으나, 이 정도로 흥행을 예상하긴 쉽지 않았다. 11월 극장 비수기 개봉, 전 국민이 다 아는 역사적 실화, 141분의 긴 러닝타임, 수정 불가능한 비극적 결말까지. 대중적으로 흥행할 영화가 되기엔 여러모로 악조건이 많았기 때문. 가볍지도 밝지도 않은 이 영화가 관객과 공명할 수 있던 비결은 뭘까.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실화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영화로서의 긴장과 재미를 잡고자 한 김성수 감독의 연출 및 시나리오 각색 등 놀랍도록 영리한 선택들이 흥행 일등공신”이라고 덧붙였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주도한 신군부 세력의 사조직 하나회가 1979년 12월 군사 반란을 성공시켜 80년대 제5공화국 시대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신군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한민국 육군본부를 장악해 정권을 찬탈했는지 반란의 구체적 과정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서울의 봄’은 드러나지 않은 그날 밤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했다.

A영화사 대표는 “사건 자체를 잘 몰랐던 2030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니 말도 안 돼’의 신선함과 흥미로 느껴지고, 사건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게도 그날 밤의 구체적 일만큼은 ‘물음표’로 남아있기 때문에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반란을 성공시킨 인물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들 위주로 분량을 할애하지 않았던 점이 한 수로 작용했다. 실제로 김성수 감독은 “원래 받았던 시나리오도 정말 좋았지만, 처음엔 이야기가 악역 ‘전두광’(황정민 분) 위주로 나와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잘못 다뤘다가 ‘반란군의 승리’에 대한 기억만 조명될 것 같다는 피드백이 있더라”며 “무엇보다 악당인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보이면 이 영화를 만든 취지 자체가 무색해지는 것이라 많은 고민을 했다. 인물에 매력이 있어야 관객이 모이지만, 이 영화의 악역만큼은 그랬으면 안됐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원래 시나리오에선 적은 비중이었던 이태신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10개월간 고민을 거쳐 2020년 여름부터 김성수 감독이 시나리오를 각색했고, 전두광과 하나회의 반란에 맞서 서울을 지키려 한 군인들을 다룬 지금의 이야기로 변화했다. 복잡한 현대사를 다뤘지만, 젊은 관객들에게도 친숙히 다가갈 수 있게 이 사건을 악역 ‘전두광’과 반란에 맞서 본분을 지키려 한 군인 ‘이태신’(정우성 분)의 일대일 대결 구도로 쉽게 재구성했다.

특정 인물에 대한 주관적 평가나 감상은 남기지 않되 캐릭터들로 다양하고도 현실적인 인간군상을 그려 논란의 여지를 줄이고, 몰입도를 높였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실존 인물들의 실명과 성격을 그대로 쓰지 않고 영화적 흥미를 위해 각색해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이태신’”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성수 감독은 ‘이태신’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실존 인물 대신 배우 정우성의 평소 성격을 참고, 이태신을 불같은 성정의 전두광과 정반대인 ‘물’같은 캐릭터로 표현했다. 전 평론가는 “전두광은 불, 이태신은 물처럼 완전히 대비되게 그려놓으니 캐릭터들의 개성이 더 강렬해지고, 속도감있는 연출과 시너지를 빚은 것”이라고 평했다. 각색된 캐릭터들의 실마리가 된 실화 속 인물들을 찾아보는 행위가 관객들의 또 다른 재미요소가 됐다고도 분석했다.

B제작사 대표는 “조직과 인간관계의 관점에서도 이 영화에 공감되는 포인트는 많다”며 “전두광이란 절대악은 판타지이지만, 반란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이를 날린 무능하고 안일한 육군본부 장성들의 원칙주의와 계급주의는 현실에도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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