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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과 데뷔 2개월 차 신인 아이돌이 국내도 아닌 일본에서 거둔 성과다. 보컬, 랩, 퍼포먼스는 기본이고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겸비한 아이돌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컬처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작사·작곡·프로듀싱에 안무 제작까지 할 수 있는 ‘자체제작 아이돌’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K팝 아이돌 시스템이다.
◇끊임없이 개선·발전해온 K팝 아이돌 시스템
최근 K팝 아이돌 시스템이 크게 비난을 받았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서 “당분간 개별 활동에 집중하며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밝히면서 리더 RM이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 것 같다’고 한 게 오해를 키웠다. 영국 ‘더 타임스’의 아시아 에디터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과거 인터뷰를 떠올리며 “방탄소년단의 삶은 ‘신경쇠약의 공식’처럼 보였고 4년도 안돼 그렇게(그룹활동 잠정 중단) 됐다”며 당시 방탄소년단에 대해 “섹시하기 보다 슬프고, 화려하기보다 지쳤으며 내가 본 백만장자 중 가장 혹사를 당했다”는 칼럼을 낸 게 이에 대한 시선을 대변한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결성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돌 시스템이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이라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사람이 만든 시스템 중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문명이 발전하면 ‘최첨단’도 ‘구식’이 되기 마련이다. 아이돌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돌 시스템은 그동안 꾸준히 문제점들을 개선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표준전속계약서 도입이다. 흔히 ‘노예계약’으로 불렸던 부당계약을 막고자 도입된 것이다. 아이돌은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에 따라 데뷔 후 첫 재계약 시점인 7년을 기점으로 활동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2014년 9월 개정된 표준전속계약서를 통해서는 아이돌이 소속사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대폭 늘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 소속사는 적절한 치료 등을 지원하고, 아동 및 청소년 연예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선택권 등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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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출신이면서 클라씨 매니지먼트를 책임지고 있는 조이현 M25 대표는 “클라씨의 경우 보컬, 안무, 언어 등 기본적인 교육은 물론이고 1대1로 멤버들의 성향에 맞춰 맞춤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며 “소통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어긋날 때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 트레이닝도 빼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 대표는 가장 신경 쓰는 점으로 팀워크와 예절 교육을 꼽았다. 그는 “멤버들마다 장단점과 개성이 다른 만큼, 한 팀으로 무대에 섰을 때 단점이 보이지 않게 서로 융화시켜 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하는 만큼 예절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곡·작사 및 프로듀싱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 멤버가 있는 경우 자체제작을 권장한다. 그룹 세븐틴은 멤버 우지가 직접 만든 곡으로 꾸준히 새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개인 및 유닛 활동도 장려하는 분위기다. 보컬 멤버는 솔로곡을 발표하거나 OST 참여를 통해 음악 스펙트럼을 넓히고, 래퍼의 경우 외부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나 유닛 활동을 통해 기량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K팝 아이돌은 기존엔 아티스트라기보다 실연자 측면이 강했는데, 최근에는 작사·작곡·프로듀싱이 가능한 멤버들이 대거 활동 중”이라며 “그룹 활동과 더불어 개별·유닛 활동의 빈도도 늘고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아이돌 그룹의 볼륨을 크게 하는 것이다. 아이돌에서 벗어나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시점에 K팝이 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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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피부색이 다르지만 세계 각지에서 ‘K팝 아이돌’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K팝 아이돌’은 대중음악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고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2019년 2월 JYP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이 손잡고 진행한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K팝 아이돌 시스템으로 탄생한 일본 걸그룹 니쥬가 대표적이다. 또 CJ ENM은 일본 현지 기획사 등과 손잡고 제작한 오디션 ‘프로듀스101 재팬’ 시즌1과 시즌2를 통해 JO1과 INI를 데뷔시켰다.
‘필리핀 국민 아이돌’로 불리는 SB19도 K팝 아이돌 시스템으로 제작된 그룹이다. 필리핀 현지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는 SB19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와 함께 미국 빌보드 핫 트렌딩 송즈 차트에서 경쟁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도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현지 인재를 발굴해 ‘중동판 아이돌’을 제작하고 ‘사우디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이브는 유니버설뮤직 산하 게펜 레코드와 합작해 미국에서 활동할 걸그룹을 만들 계획이다.
김 평론가는 “에이전시만 담당하는 유럽, 영미권에 비해 K팝 아이돌 시스템은 노래부터 안무, 캐릭터, 콘셉트, 의상까지 전문가가 전략기획을 통해 제작에 나서는 만큼 성공 확률이 높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의 브랜드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 또한 마케팅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