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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한국 스포츠 외교 '에이스'가 필요하다

이석무 기자I 2021.07.06 06:00:00
1999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김운용 IOC위원이 피아노 연주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3년 제125차 IOC 총회에 참석했던 고 이건희 IOC 위원.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성화봉송로 내 독도표시는 순수한 지형학적 표현이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

우리 정부가 보낸 도쿄올림픽 조직위 홈페이지 독도 표시 항의 서한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답변이다.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복붙’(복사+붙이기)한 것이다.

이에 앞서 IOC는 2032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호주 브리즈번을 우선 협상 후보지로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의사를 밝혔던 우리 정부나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접한 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처참한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독도도, 올림픽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한국 스포츠 외교의 현실이다. 올림픽을 두 차례나 치른 스포츠 강국이라면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이처럼 국제 스포츠 외교에서 무시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한국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능력과 경험을 갖춘 스포츠 외교관의 활약 덕분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1981년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올림픽 유치를 이끌었다. 서울올림픽 유치는 대한민국 스포츠 외교 역사를 바꾼 ‘1호 대첩’으로 평가된다.

IOC 부위원장까지 맡았던 고 김운용 IOC 위원은 당시 국제스포츠 인사들과 끈끈한 인연을 바탕으로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남북 동시 입장’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IOC 위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강원도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삼성의 올림픽 공식 파트너 참여를 이끌면서 올림픽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심지어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박태환이 억울한 실격을 당하자 현장에서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해 판정 번복을 이끌어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국 스포츠 외교를 이끌 주인공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한국에는 2명의 IOC 위원이 있지만 최근 불거진 사건에서 이들의 역할은 아쉽다는 지적이다. 독도 표기 문제의 경우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등 민간에서 더 활발히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IOC위원은 단순히 명예직이나 권력이 아니다. 스포츠 외교 최전선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스포츠 외교는 외부 간섭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IOC는 항상 ‘스포츠와 정치는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올림픽 헌장 50조 3항에는 ‘모든 올림픽 관련 시설, 지역 내에서는 어떠한 정치·종교·인종 차별에 관한 시위, 선전활동도 금지한다’고 돼 있다.

그래서 스포츠 외교는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적인 인연과 이해관계 등이 끈끈한 연결고리처럼 작용한다. IOC 위원 개인의 경쟁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IOC 위원의 능력이 떨어지면 그 국가의 스포츠 위상 하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스포츠가 국제 무대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능력과 자질을 갖춘 ‘에이스’를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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