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흥 대종상 단편영화제가 열리기에 앞서 지난해 횡령 의혹 등 불협화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묵묵히 지켜봤다. 지역민을 위한 축제이자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의 축제이니 기왕이면 성료하기를 기대했다. 지난해 행사를 진행한 업체들의 불만과 관련된 제보도, 지역 유지가 협찬한 1억4000만원이 증발한 사건도 올해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 아니었다. 올해 영화제는 대종상영화제 주최와 고흥군 주관으로 열렸다. 지난해 구설에 오르자 올해 행사는 대종상 영화제 사무국이 직접 나섰다. 하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대종상영화제의 숨은 실력자이자 온갖 불협화음의 중심에 있는 정인엽 대종상영화제 부이사장이 단편영화제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먼저 들렸다.
개막에 앞서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포털사이트에서 개설된 공식 홈페이지는 아예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5억 원 가까이 드는 영화제인데, 대중에게 어디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하는지 소개하는 코너조차 찾기 어렵다. 언제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 심사위원으로는 누가 참여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열렸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영화제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대종상영화제 홈페이지에는 수상자 명단조차 제데로 공지되지 않았고, 보도자료 한 장이 전부였다.
고흥군청의 답변은 가관이다. “홈페이지가 기술적인 문제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고흥군청 홈페이지와 대종상영화제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고 했다. 한가한 답변이었다. 이리저리 뒤져봐도 정보를 찾을 길이 없다. 고흥군청 관계자에게 “열리는 모양새를 보면 몇천만 원 수준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군에서 지원하는 4억 원 가까운 돈은 도대체 어디로 쓰이느냐?”라고 되물었다. 관계자는 “지난해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담당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올해는 정산을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온갖 구설에 시달렸음에도 사전 준비가 이런 식이니 사후 검증이 제대로 될지 의심스럽다.
지난해 고흥 대종상단편영화제는 고흥군 예산 2억 5000만 원을 비롯해 6억 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올해 규모는 4억 6000만 원 선으로 알려졌다. 고흥군청은 “변변한 촬영 장비 하나 없이 지역 학생들의 열정으로 촬영한 작품이 청소년 상을 받아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고 군청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놨다. “지역 청소년들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주는 계기가 됐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단편영화제라면 꼭 있는 영화 트레일러조차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자신의 성과를 알리고 또 다른 꿈을 키울지 되묻고 싶다.
지역 언론, 지역민의 감시뿐 아니라 중앙기관의 감사를 통해 지자체가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썼는지 꼭 되짚어봐야 한다. 혹 세금이 지역민과 청소년의 꿈을 위해서 쓰인 게 아니라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간 게 아닌지 더듬어봐야 한다. 돈의 흐름을 추적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천연덕스럽게 제 주머니를 챙긴 이가 있다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물어야 한다. 고흥 대종상단편영화제는 지역민의 축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축제가 돼서야 말이 되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