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SPN 백호 객원기자] 재정 압박을 느끼고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정작 엉뚱한 곳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다. 물론 구단들이 흥청망청 사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피 같은 돈이 뭉텅뭉텅 낭비되고 있는 곳은 이른바 ‘먹튀’들의 호주머니 속이다.
미국의 신문 'USA 투데이'는 14일(이하 한국시간) 올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방출한 선수에게 지불해야 하는 연봉이 약 7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해 보도했다.
계약 기간 중에 있는 선수를 조건 없이 방출하면, 구단은 그 선수의 잔여 연봉을 모두 물어내야 한다. 그 선수의 계약이 내년 이후까지 남아 있으면, 그 기간의 돈도 모두 줘야 한다. 그런 돈들을 모두 합하면 무려 7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말이다.
특히 지난 한 주간 이런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방출이 많이 행해졌다. 밀워키는 13일 3루수 빌 홀을 방출했다. 홀은 4년간 2,400만 달러를 받기로 한 계약을 하고, 그 계약 기간 중 3년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밀워키는 2010년까지 남은 기간 1,050만 달러를 홀에게 그냥 줘야 한다. 땅을 칠 일이다. 참고로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프린스 필더의 올해 연봉은 650만 달러 밖에 안된다.
보스턴은 올해 연봉 550만 달러인 투수 존 스몰츠를 방출했다. LA 에인절스는 불펜 요원 저스틴 스파이어를 방출했는데, 스파이어는 계약 기간이 내년까지여서 앞으로 650만 달러를 더 받게 된다.
오클랜드는 베테랑 제이슨 지암비를 방출하면서, 그의 연봉 400만 달러 중 잔여분과 바이아웃 150만 달러를 모두 부담하게 되었다.
구단들은 왜 이런 막심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일까. 구단 입장에서는 몸값이 비싼 선수를 다른 구단에 보내면 좋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구단 중 어느 곳도 그 선수의 연봉을 부담하려고 하지 않을 때이다.
즉 선수의 가치가 몸값에 비해 현저히 낮을 때 문제가 된다. 구단은 그 선수가 로스터 자리만 차지할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길 때 할 수 없이 ‘방출’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밀워키의 토니 아타나시오 부단장은 “구단으로서는 최상의 25인 로스터를 꾸리려고 애를 쓴다. 선수의 몸값이 아무리 높더라도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로스터에 집어넣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비싸고 쓸모없는 베테랑을 방출하고) 젊은 선수를 로스터에 넣어 키우는 것이 낫다.”라고 설명했다.
아타나시오 부단장의 이야기 자체는 극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뛰지도 않는 선수에게 거액의 연봉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싫은 일일 것이다. 선수의 성적이 워낙 형편없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빌 홀은 올 시즌 타율 2할1리에 6홈런 24타점, OPS 6할6리라는 그야말로 끔찍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밀워키 아니라 어떤 메이저리그 구단 25인 로스터에서 들기 어려운 성적이다.
스몰츠는 올해 2승 5패 방어율 8.32를 기록했다. 역시 용납하기 어려운 성적이다. 저스틴 스파이어는 그래도 좀 나았지만, 어쨌든 방출되기 전까지 방어율 5.18을 기록 중이었다.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 팀들 같으면, 선수를 마냥 2군에 박아 두었을 것이다. 어차피 연봉을 줘야 하는 것이라면, 다른 팀에 갈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보다는 팀 내에 어떤 식으로든 묶어 두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메이저리그 계약을 한 베테랑 선수를 임의로 마이너리그에 보낼 수가 없다. 선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남겨 두는가, 아니면 방출할 수밖에 없다.
7,000만 달러라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총 연봉 24위에 해당할 정도의 큰 금액이다. 이렇게 막대한 돈이 쓸모없는 선수의 불로소득으로 변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