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아시아식(式) '스몰 볼(small ball)'이 세계 야구의 한 축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야구의 월드컵'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아시아 대표로 출전 중인 한국과 일본이 선전하면서 아시아 야구 특유의 철저한 분석에 기초한 작전과 짜임새 있는 수비를 중시하는 '스몰 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북중미팀 "스몰 볼이 초강세"
일본은 지난 16일 철저한 스몰 볼로 쿠바를 완파했다. 일본은 12안타를 쳤지만 장타라고는 상대 우익수가 햇빛 때문에 놓쳐서 만들어 준 조지마 겐지의 2루타 한 개가 전부였다. 일본 타자들은 장타를 노리기보다는 톡톡 맞히는 타격으로, 주자들은 현란한 발놀림으로 쿠바 투수들 힘을 빼놓았다. 반면 힘에 의존하는 '롱 볼(long ball)'을 선호하는 쿠바 타자들은 큰 스윙으로 일관하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노련한 피칭에 말리고 말았다.
한국 역시 지난 16일 스몰 볼에 한국 특유의 뚝심을 가미한 야구로 멕시코를 완파했다. 멕시코의 카스티야 감독은 경기 전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 펫코파크에서는 아시아식 스몰 볼이 효과적"이라고 말했지만 한국의 변화무쌍한 작전에 말려 무릎을 꿇었다.
한국과 일본에 각각 패해 패자전으로 밀린 멕시코와 쿠바 야구는 한·일 야구의 강세를 솔직히 인정하며 한·일 모두 스몰 볼을 하고 있는 데 주목했다. 멕시코 라 아피시온 신문의 미겔 보아다 나헤라 기자는 "한국과 일본 모두 매우 영리한 야구를 한다. 점수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그는 "타자들이 장타보다는 맞히는 타격을 하며, 공격보다는 투수와 수비력으로 승부를 거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쿠바의 훌리아 오센다 디아스 기자 역시 "한국 야구는 무척 빠르고 수준이 높다. 타격은 좀 약하지만 수비와 투수가 좋다"면서 "한국과 일본이 쿠바와 함께 세계 야구의 정상"이라고 말했다. 북중미 국가들은 한국이 5개의 도루로 일본(4개)을 제치고 1위를 달리는 등 기동력의 야구를 펼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역시 '스몰 볼'에 능한 팀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야구는 '퓨전 볼'?
하지만 일본측은 한국 야구를 일본식의 스몰 볼보다는 미국식에 가깝다고 분류하고 있다. 일본의 이치로는 17일 "한국 선수들은 몸집도 크고 미국 스타일의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실로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일본이 생각하는 스몰 볼과는 색깔이 다른 야구를 펼쳤다. 16일 멕시코전 1회 상황처럼 무사 1·2루에서 번트를 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작전보다는 타자에게 맡기는 경향이 뚜렷했다.
한국이 이번 대회 5게임에서 시도한 희생번트는 멕시코전 6회 때 이용규의 번트 1개뿐이었다. 일본은 특별한 번트 기회가 없어서인지 2개에 그쳤지만, 지난 9일 한국전 8회 1사 1루에서 나카지마에게 번트를 시키는 등 일본식 야구에 충실했다. 일본의 이번 대회 홈런이 3개에 불과한 데 비해 한국은 7개의 홈런으로 16일 현재 참가 16개국 중 5위를 기록 중이다. 한국은 40개의 안타로 34점을 얻어내 득점 생산력에서도 1위다. 일본은 37안타로 24점을 뽑아 멕시코(0.78)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이다.
일본의 눈에는 한국 야구가 빠른 주루 플레이에 의존해 적은 안타로 많은 점수를 뽑아내는 스몰 볼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미국식 파워를 겸비한 일종의 '퓨전 볼(fusion ball)'로 비치는 것 같다. 이름이야 어쨌든 한·일 3차전에선 일본식 스몰 볼과 한국식 퓨전 볼 중 어떤 야구가 승리할까.
스몰 볼(small ball)과 롱 볼(long ball)
'스몰 볼(small ball)'은 공격 때 도루, 희생번트 등 세밀한 작전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짜임새 있는 수비와 데이타에 기초한 불펜투수들의 기용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스타일의 야구를 지칭한다. 일본식 야구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롱 볼(long ball)'은 선수들의 방망이에 의존해 대량 득점을 노리는 미국식 야구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