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제공] "발을 잘못 딛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죠."
이경원(28·삼성전기)은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결승전의 부상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이미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다"고 했다. "발목 인대를 다쳤는데 경기 중 그런 부상을 당한 건 선수 생활하며 처음이었어요. 파트너인 (이)효정이에겐 말도 못하고 그냥 뛰었죠."
하필 꿈에 그리던 올림픽 결승전에서 일어난 일. 이경원은 압박 붕대를 감은 발목으로 겨우 셔틀콕을 넘겼지만 상대인 중국 선수들은 집요하게 이경원을 노렸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어요. 누구 발목도 아닌 바로 제 발목이니까요. 효정이가 다친 저를 대신해 두 배로 뛰느라 실수가 많았죠. 효정이가 오히려 경기 후 팬들의 질책을 받을 땐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목에 걸린 은메달은 빛났지만 아쉬움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경원의 미안한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이효정은 이용대와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마음껏 축하해줬죠. 근데 확실히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크더라고요. 팬들의 반응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자신의 만족감이에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금메달의 삶을 살고 싶지 않겠어요?" 이경원은 "협회의 은메달 포상금(2000만원)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금메달 포상금 3억원(복식조는 1인당 1억5000만원)과 비교하니 그 차이가 확실히 실감나더라"며 "대신 효정이가 노트북 컴퓨터를 사주기로 했다"며 웃었다.
그래도 얻은 것은 많다. 미니 홈페이지에 남긴 팬들의 성원 글을 보며 이경원은 모니터 앞에서 자주 훌쩍거렸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저는 행복했지만 동료들을 보며 올림픽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도 새삼 했어요. 다들 힘들게 준비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철저히 잊혀지니까요. 올림픽은 정말 냉정한 무대예요."
4년 뒤 런던 올림픽은 아직 그녀의 머릿속엔 없다. 은퇴를 생각하진 않았지만 미래를 차분히 그려볼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너무 힘들게 준비했던 터라 지금은 배드민턴 생각이 안 나요. 쉬면서 생각을 좀 하려고요. 그러다 '운동 본능'이 다시 꿈틀대면 그땐 또 미친 듯이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