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경 미술감독은 최근 서울 중구 이데일리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진 기이한 일들을 그린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개봉 16일 만에 700만명을 돌파한 ‘파묘’는 ‘곡성’을 꺾고 한국 오컬트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또 지난 10일 800만 관객을 넘어 14일 오전 900만 돌파에 근접해, 천만 돌파를 향해 질주 중이다.
서성경 미술감독은 ‘보통사람’(2017)의 공동 미술감독을 시작으로, ‘사바하’(2019)와 ‘가장 보통의 연애’(2019), ‘#살아있다’(2020)의 미술 작업을 진행했다. 서성경 미술감독과 장재현 감독의 만남은 ‘사바하’에 이어 ‘파묘’가 두 번째다.
서 미술감독은 ‘파묘’의 흥행에 대해 “소재가 흥미롭고 신선하다 생각은 했지만, 장르성이 강해 이렇게까지 흥행할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다”며 “세트와 소품들을 만들면서도 ‘이걸 관객들이 얼마나 알아줄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감사히도 배우분들이 미술팀의 노고를 많이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재현 감독과의 남다른 인연과 그를 향한 고마움도 전했다. 서 미술감독은 “‘보통사람’은 공동 미술감독이었고, 단독 미술감독으로서 첫 영화가 ‘사바하’다. 당시 갓 입봉한 미술감독이라고 많이들 불안해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장 감독님은 참 도전적이고 과감하신 분”이라며 “값진 기회를 주신 고마운 분이다. 특히 장 감독님의 영화는 소재도 신선하지만 생경한 분야라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이번 영화도 무속과 풍속이 결합했고, 핏줄이란 한국적 소재가 겹쳐 신선한 K오컬트가 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장재현 감독만의 확고한 연출 철학도 강조했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다른 분들보다 좀 더 직접 경험하고 본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을 중시한다”며 “캐릭터들의 전문성, 상황 설정이 디테일하다”고 전했다. 또 “감독으로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할수록, 미술감독의 입장에서도 메시지에 도움이 되는 미술을 고민할 수 있다”며 “자신 역시 보기 좋은 미술보단 이야기에 도움을 주는 미술을 지향하는 편이라 시너지로 작용한 것 같다”고도 부연했다.
CG 의존을 최대한 낮추려는 장재현 감독의 뚝심에 공감한다고도 밝혔다. 서 미술감독은 “배우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걸 매우 중시하신다”며 “미술로선 고생스럽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매 작품 최선을 다하지만 ‘파묘’는 특히 최선을 다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장 감독님이 촬영 중간에 ‘네가 되게 자랑스러워 할 만한 프로필을 만들어주겠다’고 말씀하셨었다. 그 말씀처럼 정말 자랑스러운 작품”이라고도 덧붙였다.
‘파묘’의 흥행 비결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비과학적이란 편견을 갖고 있던 소재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해서인 것 같다.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도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업이지만 영화 안에선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이 사람들이 힘을 모아 큰일을 해낸 뒤,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꼽았다. 또 “어둡고 다크하게 가다가도 중간에 위트가 터져나오는 감독님의 시나리오 스타일도 한몫했다”고도 설명했다.
편집 과정에서 생략된 디테일들도 전했다. 서 미술감독은 “박지용(김재철 분)의 사는 LA의 집에 핏줄이나 뿌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의 나뭇가지들을 세팅했었다. 영화에선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의도를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며 “이밖에 호텔 스위트룸이나 보국사 창고에 도깨비 그림을 넣고, 별채에 맹호기상도도 그렸는데 영화에선 편집돼있다”고 귀띔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진짜 열심히 쓰신다. 이 영화를 위해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하러 다니실 때 직접 인증 사진도 보내주셨다. 본인이 실제 경험하면서 쓴 시나리오의 디테일은 따르기 힘든 거 같다”며 “감독님 글 자체가 재미있다. 프리프로덕션 때 작업 준비를 위해 ‘동양요괴도감’ 같은 책도 읽었다. 이런 걸 언제 읽어보겠나”라고 장재현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느낀 즐거움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