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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차체 최초로 경기도에 문을 연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는 한국 체육의 달라진 인권 의식을 잘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아직은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 하지만 점차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워 꽃과 열매를 맺기를 체육계는 바라고 있다.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최숙현 선수의 죽음은 한국스포츠는 물론 우리 사회에도 엄청난 충격이었고 스포츠인권의 싹을 틔우는 소중한 씨앗이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어디에선가는 억울하게 흘렸던 눈물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스포츠 인권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과 일문일답.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가 지난해 7월 문을 열었습니다. 경기도 인권센터는 어떤 단체인가요.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는 2022년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설립된 스포츠 인권 상담·교육 기관입니다. 핵심 키워드는 ‘스포츠 인권 보호’이고 주된 업무는 교육 및 상담인데요. 피교육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찾아가는 인권교육’과 ‘온라인 교육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원하시는 분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담은 인권침해나 폭력, 불공정 피해 등을 입은 분들을 도와드리는 업무인데요. 심리상담, 법률 상담을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상담 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검찰 및 경찰, 스포츠윤리센터 등 전문기관에 연계하게 됩니다.
-경기도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스포츠인권센터가 생겼습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요.
△2020년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많은 분이 기억하시겠지만 최숙현 선수가 남긴 마지막 문자,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는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가슴을 파고들어 왔죠. 이 사건을 계기로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운동선수 체육인 스포츠 인권 조례’를 제정했고요. 이 조례에 근거해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가 설립됐습니다. 경기도가 선례가 돼 전남스포츠인권센터가 설립됐습니다. 지난 달엔 제주도에서도 스포츠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사례 연구를 위해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 같아선 전국의 모든 스포츠인권센터를 ‘최숙현인권센터’라고 하고 싶은데요. 최숙현 선수의 죽음은 한국스포츠는 물론 우리 사회에도 엄청난 충격이었고요. 스포츠 인권의 싹을 틔우는 소중한 씨앗이었다고 봅니다.
-고 최숙현 선수 비극 이후 스포츠계 인권에 대한 관심과 개선 노력이 높아진게 사실입니다. 현재 스포츠계 인권 상황은 얼마나 나아졌나요.
△최숙현 선수 사건 이후 스포츠 인권 전담기구가 설립됐고 법률의 제·개정과 제도 개선도 이뤄졌습니다. 스포츠 인권 개선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스포츠 인권은 분명히 개선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2년 김포 FC에선 유소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포츠윤리센터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장애인 선수 중 20.5%가 최근 2년 내 인권침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각한 것은 인권침해를 당한 선수 3명 중 1명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두고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3년 동안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질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All or Nothing’식의 진단이나 평가엔 공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의 노력이 있었기에 어디에선가는 억울하게 흘렸던 눈물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죠. 중요한 것은 스포츠 인권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성과와 비성과, 효율과 비효율, 현장과 비현장 등 다양한 기준으로 정책의 성과와 운영 등을 평가해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지원할 것은 지원하며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개선하게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목격하고 있는 일종의 관성인데요. 대형 사건이 터지면 늘 비슷한 프로세스가 반복됩니다. 언론이 먼저 사건을 극대화하죠. 그러면 여론이 악화되니까 정부는 급하게 대응책을 발표합니다. 급하게 새로운 조직, 법령 등을 만들다 보니 공동체의 철학과 비전까지 담아낼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성의 결과가 스포츠 인권에선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탄생했다고 보는데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일 수는 없습니다. 본원적인 대책은 의식의 변화로 이뤄진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창조라고 봅니다. 스포츠 인권 정책의 지향점도 새로운 스포츠문화의 창조로 귀결돼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이런 겁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애향심, 애교심에 불타는 팬들이 가끔 경기장에서 물병을 투척했죠. 한 명이 물병을 던지면 이게 신호가 돼서 욕설, 투척 등의 행위가 잇따랐습니다. 군중심리입니다. 지금은 누군가 욕설이나 투척을 하면 관중들이 ‘하지마, 하지마’를 함께 외치죠. 이건 자정능력인데요. 우리 스포츠팬들의 의식 수준이 이미 경기장 난동을 허용하지 않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겁니다. 군중심리와 자정능력의 차이가 의식과 문화인데요. 때문에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의식의 함양, 새로운 스포츠문화의 조성이 스포츠 인권 정책의 목표이자 비전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가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는 2022년에 설립돼 이제 2년 차입니다. 아직도 부족한 게 많이 있습니다. 주 업무는 말씀드린대로 교육과 상담입니다. 교육과 상담에서 경기도의 협조를 얻어 주요 체육단체, 학교 등에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의 활동을 알리고 있는데요. 교육은 신청이 접수되는 대로 전문 강사가 ‘찾아가는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고요. 상담은 접수 받은 사례에 대하여 상담 및 심리,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팀이나 학교에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가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고지하고 있습니다. 이외 경기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스포츠 인권 침해 사례 등을 꾸준히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문화연구소에서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를 수탁운영하고 있는데요.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가 경기도의 위탁운영 사업인가요.
△현재 시민단체인 스포츠문화연구소가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를 수탁운영하고 있습니다. 계약기간은 1년입니다. 장단점이 있는데요. 계약기간 1년짜리 위탁운영의 장점은 공정성과 투명성이고요. 단점은 1년 수탁이다 보니 사업계획이 단기적이고 일회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교육과 상담, 기본적인 업무에 충실해야 된다는 생각이고요. 아직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홍보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경기도 체육계와 체육인을 특정화해 이들에게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를 알릴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향후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의 활동 계획 및 목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1년 수탁사업이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거나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는 힘듭니다. 다만 1년 사업을 마치면서 남기고 싶은 흔적이라고 할까요. 스포츠 인권을 위한 제언 같은 것을 일종의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스포츠 인권에 대한 의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정책적 아이디어를 많이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동안에는 경기도스포츠인권센터를 일종의 체육시민사회의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좀 더 밝은 미래를 소망하는 분들이 만나서 제안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스포츠는 본래 신체와 정신의 밸런스를 중요시합니다. 한국 스포츠엔 한국 현대사의 압축성장이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지금은 결과 위주, 소수 엘리트, 효율이라는 작동 방식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거고요. 압축성장 시기 가장 큰 손실은 정신세계의 소멸입니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권을 얘기하고 새로운 스포츠문화를 조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인권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불가역적인 스포츠 인권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님은 직접 운동을 하시나요. 원래 경기인 출신은 아니시죠.
△스포츠를 좋아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고요. 선수 출신은 아닙니다. 스포츠기자를 하면서 스포츠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스포츠를 취재하면서 스포츠 세계를 알게 됐고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는 것도 많이 생겼습니다. 조금씩 공부를 하다 보니 스포츠가 단순히 즐거움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보고 배웠던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과 모순처럼 스포츠에도 발전과 모순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바꿀 수 있는 건 바꾸자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