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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하는 제작비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드라마 업계에서 국내와는 규모가 다른 ‘차이나머니’는 외면하기 쉽지 않은 유혹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한복, 김치 등의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문화공정에 대해 시청자들이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차이나머니’는 득이 아닌 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같이 예민한 시기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계 관계자들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요즘 시청자들은 예전과 다르다며 “방송을 보며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소비생산과 흐름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식, 이런 걸 생각하고 사명감을 갖고 연출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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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N ‘여신강림’, ‘빈센조’에 중국 제품이 PPL(방송간접광고)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여신강림’ 주인공은 편의점에 앉아 중국 즈하이궈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었고, 그가 앉아 있던 버스정류장에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광고가 등장했다. 이같이 무분별한 중국 PPL이 등장하며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내비쳤다.
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음에도 ‘빈센조’에서는 남자주인공인 송중기가 중국 즈하이궈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등장해 또 한번 비난을 샀다. 문제는 중국 제품이 등장했다는 것도 있지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크다. PPL이라 하더라도 극의 흐름과 이어지는 장면에 등장했어야 하는데 국내에서 판매되지도 않는 제품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SBS ‘조선구마사’에 등장한 중국풍 소품들은 역풍을 맞았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사극 ‘조선구마사’에는 기생집에 중국식 음식인 월병, 피단, 중국식 만두가 등장해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PPL은 아니었지만 중국 음식을 등장시키며 역사를 왜곡할 만한 빌미를 줬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였다.
김 평론가는 “중국의 직접적인 투자를 받지 않은 경우에도 중국 시장의 진출을 겨냥해 문화와 기호를 넣어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구마사’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그런 욕심들이 정체불명의 사극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투자를 받거나, 해당 콘텐츠를 수출할 때를 고려해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들이 오히려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국내 시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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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PPL, 역사 왜곡 등의 문제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제작사, 연출자가 드라마를 상품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드라마는 하나의 상품이기도 하지만, 콘텐츠고 문화다. 특히 글로벌적으로 한국의 콘텐츠들이 주목 받는 상황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이들도 이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지적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나라 드라마를 세계인이 지켜보게 된 만큼, 콘텐츠를 우리 문화·역사를 알릴 수 있는 매개체로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해외 자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왜곡,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고 자긍심,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을 한다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데 있어서 우리 역사,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행히 tvN ’여신강림‘, ’빈센조‘의 PPL 논란과 SBS ’조선구마사‘의 폐지로 드라마 업계에서도 중국 자본을 조심하자는 경각심이 생겼다. 그동한 한한령으로 드라마 업계에 중국 자본이 막히며 중국 자본 없이 드라마를 만든 것이 가능했고, 넷플릭스 등 OTT 새로운 판로가 생기며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국내 투자가 많지 않다 보니까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중국 시장이 크다보니 쉽게 중국의 자본을 받았다”라며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드라마 업계에서도 확실히 조심을 하자는 분위기다. 액수가 크지 않은 PPL 같은 건 더 조심하게 될 것이고, 다들 드라마 제작에 더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