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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결집력과 행동력만 강한 게 아니다.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공격·음원사이트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반복 재생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중장년 팬덤의 활동 방식은 요즘 세대들 만큼이나 ‘스마트’하다. 트롯 가수들의 곡이 인기 아이돌 가수들의 곡을 제치고 음원차트에서 두각을 보이는 사례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팬 활동 빈도에 따라 채널 순위가 정해지는 멜론의 모바일 팬 커뮤니티앱인 ‘아지톡’에서는 임영웅, 김호중, 송가인 등 트롯 가수들의 채널이 순위 최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채널(10위) 보다도 순위가 훨씬 높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젊고 트렌디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 중장년층이 1020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팬덤 문화를 고스란히 흡수하는 분위기”라며 “중장년 팬덤의 경우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활동의 파급력이 젊은층 위주인 팬덤보다 훨씬 더 폭발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고 과거의 중장년층과 달리 온라인 문화에도 친숙해 유튜브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활용하는 강력한 주체로도 떠오르고 있다”고 짚었다.
중장년 팬덤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아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각되고 있는 5060세대를 일컫는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fe) 세대의 특징과도 맞닿아있다. 실제로 최근 중장년층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최고 시청률 35.7%를 찍으며 신예 트롯 스타들을 대거 탄생시킨 ‘미스터트롯’ 역시 중장년층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면서 2020년 최고의 히트 콘텐츠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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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의 경우 전 매니저와 금전 시비, 전 여자친구 폭행 의혹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지만 굳건한 팬들의 든든한 응원 속에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논란 와중에 발간된 자서전 ‘트바로티 김호중’은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고, 첫 번째 정규앨범 ‘우리家’의 선주문량은 톱아이돌 가수들의 앨범 판매량 수치에 버금가는 42만장을 돌파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트바로티 김호중’ 구매자의 약 60%가 40대 이상이었다. 그런가 하면, 김호중의 유튜브 채널 시청층 중 94.3%는 여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모진 시집살이를 경험했던 세대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논란에 휩싸인 김호중을 감싸안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020 팬덤의 경우 좋아하는 스타에게 논란이 생기면 비판을 제기하고 ‘탈덕’을 하는 현상도 종종 목격되는데 중장년층 팬덤은 논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여러 풍파를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서인지 논란이 생겨도 관대한 시선으로 스타를 바라보며 감싸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중장년층은 좌절을 이겨내고 극적인 성장 스토리를 써낸 스타에게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며 감정이입을 하기도 한다. 가수 양준일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1990년대 초반 짧은 활동을 펼친 뒤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재소환되며 ‘늦깎이 스타’로 떠오른 양준일의 이야기는 수많은 중장년층을 열광케 했다. 김호중 역시 청소년기의 방황을 끝내고 음악을 통해 반전을 이뤄낸 영화 같은 인생사가 인기에 힘을 보탰다.
최영균 대중문화평론가는 “중장년팬덤의 경우 스타를 키워내 자리를 잡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고자 하는 욕구가 1020 팬덤보다 강하다. 일종의 부모의 마음으로 팬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서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벽돌을 함께 쌓아올렸다는 동질감이 팬덤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높여주기도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