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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들어왔고 실제로 시스템이 많이 달랐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예상하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벽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그것을 뛰어넘을 생각만 했다.”
성민규 단장은 지난해 9월 ‘최연소 단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부임했다. 단장은 실질적으로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총책임자다. 나이보다 그의 경력이 더 파격적이었다. 2007년 프로야구 KIA에 입단한 선수 출신이지만 경기에 뛰지 못하고 이듬해 방출됐다.
은퇴 후에는 한국 야구가 아닌 미국 야구에서 일했다. 2008년 26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코치로 시작했다. 말이 코치였지 열악한 마이너리그 환경에서 훈련 보조, 구단 버스 운전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성민규 단장은 능력을 인정받아 2011년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스카우트로 변신했다. ‘염소의 저주’를 푼 테오 엡스타인 컵스 사장을 도우면서 메이저리그 구단의 시스템을 배웠다. 태평양 스카우팅 슈퍼바이저 겸 컵스 단장 특별보좌관이라는 직책도 받았다.
성민규 단장은 부임하자마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우선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니고 감독 경험도 없었던 허문회 키움 수석코치에게 롯데 지휘봉을 맡겼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지난 1월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인 2루수 안치홍을 ‘2+2년 최대 56억원’ 조건에 데려온 장면이었다. 2+2년 계약은 한국 프로야구 FA 시장에서 없었던 개념이었다. 하지만 성민규 단장은 메이저리그 방식의 계약을 과감히 도입했고 안치홍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나이가 젊고 한국 프로야구 경험도 없었던 내기 단장을 맡는다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지금도 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보이지 않는 시선, 시기와 계속 싸우는 중이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걸 깨는 맛으로 지금 단장 일을 하고 있다.”
성민규 단장의 행보는 지난 겨울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끈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배우 남궁민이 연기한 ‘돌직구 리더’ 백승수 단장과 맞물리며 더욱 화제가 됐다. “시스템을 바로 세울 것”이라는 백승수 단장의 대사는 성민규 단장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를 ‘프로세스(절차) 야구’라고 불렀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몸으로 체득한 방식을 롯데에 적용하는 중이다.
성민규 단장에 대한 기대가 집중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한국 야구는 최근 들어 팬들의 이탈이 뚜렷한 상황이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 관중은 728만명에 그쳤다. 전년 대비 10%나 감소하면서 프로야구 호황을 상징하던 800만명이 5년 만에 무너졌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 국제대회에서도 한국 야구의 경쟁력은 퇴보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프로야구 전체가 안방 인기에 취해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30대 젊은 단장의 등장은 KBO리그에 광범위하게 퍼진 위기 의식에서 나온 변화의 첫 걸음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설익은 성민규 단장이 도전이 시행착오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올 시즌 뒤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팬들의 갈증을 충족시킨다면 KBO리그는 다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 빌리 빈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사장은 경험과 감에 의존했던 메이저리그를 ‘데이터 야구’로 바꿔놓았다. 성민규 단장도 5월 5일 개막하는 KBO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