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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대박' 속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조우영 기자I 2012.10.26 08:12:29
싸이(사진=권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한때 국내 야구팬이 한국 야구를 재미없게 느낀 적이 있다. 1994년 박찬호가 LA다저스에 입단, 1997년부터 수년간 승승장구했을 때다. 메이저리그에 익숙해진 대중의 눈이 높아졌다. 양국 리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야구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대중 음악계에선 요즘 싸이(35·본명 박재상)가 그러한 존재다. 싸이는 26일 공식 발표된 미국 빌보드 싱글 메인차트 ‘핫100’서 ‘강남스타일’로 5주 연속 2위를 차지했다. 정상은 또 마룬파이브의 ‘원 모어 나이트(One more night)’에 내줬다. 두 곡 모두 뒷심이 세다. 질긴 맞수다. 지난 9월14일 해당 차트에 64위로 진입한 이후 무려 두 달이 넘도록 차트 정상을 넘보며 전 세계서 회자되고 있다. ‘싸2(이)와 마룬파이브의 대결이 원 모어 위크’(One more weeK)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2위도 대단한 성적이다. 하지만 매번 그의 빌보드 1위 등극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과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국내 대중 가수로서는 유례없는 성과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 공신력을 인정받는 세계 대표 차트 정상이란 상징성 때문이다. 기대가 큰 만큼 오히려 실망감을 드러내는 웃지 못할 반응도 나온다.

◇ 빌보드에 쏠린 관심..국내 가수 ‘한파’

싸이와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웃고 있지만 다른 가수들은 웃지 못한다. 인기가 많은 가수에게 언론·방송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건 당연지사. 싸이 혹은 싸이와 관련된 이슈가 아니라면 외면받기 일쑤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반면 다른 가수의 컴백이나 국내 차트 성적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었다. 싸이 활동 기간 중 왕따설에 휘말렸던 티아라와 선정성 논란이 불거진 시크릿, 19금 전략으로 주목받은 지드래곤이 아이돌로서 명함을 내밀었을 뿐이다. 장르가 다른 가수 나얼도 선전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서 5억건의 조회수를 돌파하면서 웬만한 가수들이 내세우던 ‘1000만’ 기록에는 콧방귀가 나온다. 빌보드 하위 차트나 아시아 및 일본 오리콘 차트 성적도 식상해졌다. 싸이는 물론 대중의 시선은 온통 빌보드 차트에 몰렸다. 국내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을 탐닉하던 어린 음악 팬들도 마룬파이브 등 외국 팝스타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국내 공인음악차트인 가온차트의 한 관계자는 “싸이 열풍이 몰아닥친 이후 최근 한 달간 30만건 이상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곡이 없다”며 “전체적으로 국내 음원 판매량이 매우 저조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싸이는 지난달 25일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기존 K팝 스타들이 폄하되지 않길 바랐다. 싸이는 “여러 K팝 아이돌 그룹이 먼저 만들어 놓은 길에 내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어 편승한 것일 뿐”이라며 “누군가의 도전이 나에 의해 폄하되는 게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 기형적인 국내 음원 수익 분배율

싸이의 주머니 사정에도 이목이 쏠린다. 국내외 방송·행사·CF 출연료와 저작권료 등에 따른 그의 수익은 수백억원 대에 달한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예상보다 싸이의 음원 수입은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국내 음악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남경필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자료 ‘디지털 음악시장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강남스타일’은 6개 주요 음원 차트서 9주간 1위를 했음에도 총 3600여 만원을 버는 데 그쳤다.

국내 음원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아서다. 미국의 곡당 다운로드 최저가격은 791원, 영국은 1064원이다. 한국 음원시장의 곡당 다운로드 최저가는 63원이다. 수익배분율도 다르다. 미국은 유통사가 30%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제작자, 권리자 등이 챙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멜론·엠넷 등 음원서비스 사업자들이 46.5%를 가져간다. 40%는 저작인접권자인 소속사, 9%는 작사·작곡가, 4.5%는 실연권자에게 돌아간다.

이에 대한 불만과 위헌 소지 여부를 꾸준히 제기해오던 음악계는 ‘강남스타일’ 덕분에 힘을 받게 됐다.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이 저작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하 발의안)을 지난 19일 발의했다. 이 발의안이 국회 본회의서 통과되면 앞으로 저작재산권자(가수·작사·작곡가)로부터 권리를 신탁 받아 이를 관리하거나 때리 또는 중개하는 저작권위탁관리업자의 수수료 및 사용료가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쉽게 설명하면 유통사와 플랫폼사 등이 음원 한 곡을 팔면서 중간 마진으로 챙기는 비율을 시장에 맡김에 따라 자연스러운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저작권자는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유통사와 플랫폼사를 선택할 수 있다. 그에 따른 음원 가격도 변화할 수 있다.

◇ 공연 표절 논란..모호한 잣대

싸이가 승승장구하는 와중에 공연 표절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장훈이 지난 5일 새벽 자신의 SNS에 이를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기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는 듯했으나 김장훈이 사과, 싸이와 화해하면서 갈등은 봉합됐다.

공연의 어느 요소까지를 ‘저작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의 논의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공연업계에선 일단 진행이나 조명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는 콘서트 특성상, 단순히 구성 방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표절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실제로 지난 2007년 가수 이승환이 “공연 무대를 그대로 가져다 써 표절”이라며 댄스그룹 컨츄리꼬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그러나 공연 주제를 결정짓는 ‘스토리’ 부분은 저작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연 표절에 대한 판단 기준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K팝, 미국 문화 중심을 파고들기까지

그럼에도 국내 음악 관계자들이 싸이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있다. 앞서 K팝 붐이 일었다지만 사실상 변두리 ‘습격’ 수준에 불과했다.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 싸이가 이를 주류로 끌어올렸다. 아이돌뿐 아닌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조명받을 교두보가 마련됐다.

성시권 대중음악평론가는 “소녀시대·빅뱅 등 아이돌 그룹이 K팝 세계화의 길을 닦았다면 싸이가 그 길을 넓혀 놓았다”며 “장기적으로 싸이뿐 아닌 실력 있는 K팝 가수들의 해외 진출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것도 싸이는 한국어 곡으로 해냈다. 외국 유명 뮤지션이 참여하지 않았다. 앨범 제작도 모두 국내에서 이뤄졌다. 여전히 다수 뮤지션이 팝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영국·미국을 동경하고 있다. 미국의 정상급 작곡가·세션과 협업하고 비틀즈가 녹음한 스튜디오서 앨범을 마스터링했다고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싸이가 이러한 강박관념을 한방에 깨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싸이가 미국·영국 차트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국내 인기가 덩달아 더 높아졌다. 그가 원래 인기가 없지는 않았으나 어느덧 월드스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민 가수’가 됐다. 문화적 사대주의도 콤플렉스도 아니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외국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싸이 덕에 K팝 가수 가수들이 당당히 외국 팝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그때가 진정 K팝이 미국 문화 중심을 파고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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