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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장서윤기자] 발랄하고 거침없다. 직선적인 어투에 언뜻 차가운 느낌도 들지만 오고 간 대화 속에서 견고한 자존심 안에 꽉찬 열정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탤런트 이민정(27). 올해 KBS '꽃보다 남자'의 인기남 구준표(이민호)의 약혼녀 역으로 스타덤에 오르더니 후속작인 SBS 주말드라마 '그대 웃어요'(극본 문희정 연출 이태곤)에서는 여주인공 자리를 덜컥 꿰찼다.
"처음 맡은 큰 역할에 촬영 시작 전엔 밤잠도 제대로 못잤어요. 여전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선생님들한테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차근차근 익혀가고 있어요"
일주일에 단 하루, 촬영이 없는 틈을 타 만난 이민정에게서는 스스로는 '아직 적응이 덜 됐다'지만 숨길 수 없는 당찬 면모가 엿보인다.
재벌 집안이 몰락하면서 40년간 일해 온 운전기사 강만복(최불암)의 집에 온 식구가 얹혀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린 '그대 웃어요'에서 이민정은 철부지 막내딸 정인 역을 맡았다. 어려움 모르고 살다 갑작스럽게 집안이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파혼을 당하는 등 시련을 겪지만 정인은 강만복의 손자 현수(정경호)를 어느새 마음에 담게 된다.
극 초반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가 하면 울다 지쳐 마스카라 번진 얼굴로 버스에 오르는 등 이민정에게는 유난히 '몸연기'가 많았다.
'격한 액션이 많아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는 답이 돌아온다. "도로에서 맨발로 뛰어다니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 다른 사람에게 업혀 가고…. 평소에는 어디서도 못해 볼 경험이잖아요. 재밌고 유쾌했어요"란다.
하지만 앞으로 극이 진행될수록 현수에 대한 마음도 깊어지는 정인은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이민정은 "나 또한 친한 남자 동창도 많고 쾌활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사람에겐 표현을 잘 못한다"라며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결국 고백을 못하고 끝나버린 경험이 있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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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성격도 정인이처럼 자존심이 세서 힘들어도 주변 사람들에겐 잘 내색하지 않는 편이에요.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일단 혼자서 얼마쯤 해결하고 나서야 주위에 입을 열거든요"
그렇게 늘 겉으로는 밝은 자신에 대해 '어려움 모르고 컸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많단다.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학창시절도 서울 강남 지역에서 보냈으니 그런 시선을 받을 만도 하다.
이민정은 "저도 자라면서 '고생했다'고 말하진 못해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굴곡은 있었지만 정말 힘든 일 많이 겪은 분들에 비한다면 제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그저 편하게만 자란 아이 취급할 땐 좀 씁쓸해요. 아버지 사업이 어려웠던 언젠가는 미안해서 집에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놀이터에서 몇시간 동안 울었던 기억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굳이 '나도 이렇게 힘들었었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전한다. 강단있는 성격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자신을 두고 '꽃남'으로 뜬 '벼락스타' 또는 오랜만에 빛 본 '중고신인'이라고 칭할 때도 사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학시절(성균관대 연기예술학부) 연극무대에 빠져 '서툰 사람들' '택시드리벌'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온 이민정은 방송계에는 스물 다섯 살인 2006년에야 발을 디뎠다.
대개의 연기 지망생들이 처음부터 TV나 영화 진출을 꿈꾸는 반면, 처음부터 연극무대에 재미를 붙였던 이민정은 늦게서야 방향을 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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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은 "3년 전쯤 아버지께 '저 드라마 쪽도 해보려구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너 길거리에 침 한번 안 뱉고 살 수 있겠냐'라고 딱 한 마디 하시더라구요. 그때 좀 고민했어요. '아, 얼굴이 알려진다는 건 엄청 불편한 일이겠구나'라고. 그때 너무 걱정하고 시작해서인지 아직은 불편함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어찌됐든 "벼락스타나 중고신인 두 가지 호칭 모두 솔직히 스스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는 그는 "나이로 보면 늦깎이지만 TV 드라마에 데뷔한 지는 이제 막 3년이 됐고, 그렇다고 벼락스타라고 불리기엔 그동안 연극무대에서 쌓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라고 전한다.
아직 신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벌써 세 번쯤 고비를 넘은 것 같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는 걸 알지만 하면 할수록 조금씩 힘이 붙는 것도 느껴진다.
"올해는 제 이름을 알리는 한 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스스로 '마약같다'고 느꼈던 연극 무대도 다시 서보고, 수채화같은 분위기의 멜로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아직 보여줄 게 무궁무진해 보이는 이민정의 바람이다.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