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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K-125 우승 "날자꾸나, 더 멀리 올림픽 메달 향해…"

조선일보 기자I 2009.09.07 08:44:52

평창 대륙컵서도 빛난 '18년 동고동락'… 스키점프 국가대표 4인방 꿈 무럭무럭

[조선일보 제공] 지난 5일 오후 8시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장.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김현기(26)가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점프 대륙컵 K-125 개인전 2차 시기를 위해 고도 140m의 점프대에 나타났다. 9000여 관중이 숨을 죽이고 김현기를 올려다봤다. 1차 시기 선두였던 그가 큰 실수만 않는다면 금메달도 가능한 순간이었다.

점프대를 박차고 시속 약 91.7㎞로 힘차게 김현기는 솟아올랐다. 132m. "합계 252.5점으로 김현기가 전체 1위에 올랐다"는 장내 방송과 함께 뜨거운 함성이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우승

착지 순간 '해냈다'는 벅찬 마음으로 김현기는 관중석을 바라봤다. 최근 위암 완치 판정을 받은 아버지 김진년(56)씨가 아들의 '화려한 비행(飛行)'에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스키점프로 이끈 '등대'였다. 강원도 횡계에서 태어난 김현기는 1990년 무주리조트 관리직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전북 무주로 이사했다. 그가 1991년 '스키점프 꿈나무'에 지원한 것도 아버지의 권유 덕이었다. 스키점프팀 창단은 당시 동계올림픽 유치를 노리던 무주의 기획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계올림픽이 무위로 돌아가고 지원마저 끊기면서 김현기의 고생은 시작됐다. 최흥철·최용직·강칠구와 함께 '한국 1호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됐지만, 1년에 받는 돈은 훈련지원비 390만원이 전부. 막노동은 기본, 인형 탈을 쓰고 행사 보조에 나섰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도 뛰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현기는 대구에서 식당을 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결과는 달콤했다. 그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K-90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 K-125 개인전 은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개인전 금메달과 은메달(K-98)을 따내는 '전성기'를 맞았다.

■가족보다 가까운 4인방

관중석에 아버지가 있었다면, 경기장엔 김현기가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말하는 국가대표 최흥철(28·6위), 최용직(27·23위), 강칠구(25·25위)가 있었다. 김현기는 "제 친구들이 단체전 금메달을 딴 것처럼 나를 부둥켜안고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이 국가대표 4인방은 1991년 함께 '꿈나무'로 스키점프를 시작한 뒤 현재까지 18년째 동고동락 중이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생활비와 훈련비로 나눠 썼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대학에만 3번(한체대→송호대→대구과학대)이나 같이 입학했다.

오랜 시간 이어진 호흡은 단체전 성적으로 빛났다. 어려서부터 함께 실력을 키워왔기 때문에 실력 편차가 적어, 1991년 이후 동계유니버시아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3개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동계올림픽에서도 단체전 8위에 올랐다.

이제 4인방의 목표는 내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목표는 단체전 8위에 올라 최종 결선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 등 변수가 많아 톱 10의 실력 차는 거의 없어 메달 가능성도 있다"고 김흥수(29) 코치는 말한다. 4인방의 스키점프 도전은 영화 '국가대표'보다 더 진한 감동의 드라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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