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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한국은 월드컵 무대에서 '아시아의 단골 손님'으로 통한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통해 처음 본선을 경험한 이후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통산 8회,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7회 연속 본선행을 성사시킨 데 따른 평가다.
하지만 돋보이는 발자취를 남기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만만찮은 강호들과 살얼음판 승부를 지속했고, 군데군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경험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8차례 월드컵 본선 진출의 역사는 말 그대로 '땀과 눈물의 결정체'였던 셈이다.
◇ 아름다운 첫 경험, 1954 스위스월드컵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행을 이뤄낸 의미 있는 대회였지만 우여곡절도 있었다. 일본과의 지역예선 맞대결을 앞두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일본대표팀의 입국을 불허한 탓에 한국은 홈경기마저 일본 도쿄에서 치러야 했다. 해방 이후 최초의 한일전이기도 했던 당시 경기에서 한국은 1차전 승리(5-1), 2차전 무승부(2-2) 등 종합전적 1승1무를 기록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이유형 당시 한국대표팀 감독이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해 "만약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전원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고 약속한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은 그러나 처음 출전한 월드컵 무대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처참히 무너지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 32년만의 영광, 1986 멕시코월드컵
두 번째 본선행의 꿈은 32년이 지난 1986멕시코월드컵 예선을 통해 이뤄졌다. 1차예선에서 말레이시아와 네팔을, 2차예선에서 인도네시아를 꺾고 최종예선에 진출한 한국은 또 한 번 일본과 본선 출전권을 놓고 숙명의 대결을 펼쳤다.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 원정경기서 정용환 이태호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한 한국은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1-0승리를 거둬 2연승으로 월드컵 참가국의 지위를 획득했다. 김정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가운데 최순호 허정무 박창선 정용환 등이 주축 멤버로 활약한 당시 대표팀은 2002월드컵대표팀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팀'으로 손꼽힌다.
한국은 본선에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갈색 폭격기' 차범근을 엔트리에 포함시키며 16강 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역시 세계의 벽은 높았다. 첫 경기에서 '축구 천재' 마라도나가 뛴 아르헨티나에 1-3으로 무릎을 꿇었고, 불가리아와의 2차전에서 1-1로 비긴 후 최종전인 이탈리아전에서 2-3으로 아깝게 졌다. 박창선이 멋진 중거리슛으로 월드컵 사상 첫 골을 뽑아낸 게 돋보였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 무패, 본선 전패
1988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키운 한국은 무패로 1990 이탈리아월드컵 지역예선을 통과하며 '아시아 축구 맹주'로서의 위용을 뽐냈다. 네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과 함께 한 1차예선을 6전승으로 뛰어넘었고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중국 북한 등과 2장의 티켓을 놓고 격돌한 최종예선 또한 3승2무로 통과했다. 1,2차 예선을 통틀어 9승2무(29골1실점)를 기록한 한국은 아시아국가 중 최초로 월드컵 무대에 2회 연속 출전하는 나라가 됐다.
한국은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서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벨기에와의 첫판에서 0-2, 스페인과의 2차전에서 1-3, 그리고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에서 0-1로 져 3전 전패로 물러났다.
◇도하의 기적, 1994년 미국월드컵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은 역대 월드컵 도전사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했던 순간으로 회자된다. 아시아축구의 평준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이란, 이라크, 북한 등과 함께 한 최종예선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라크(2-2)와 사우디아라비아(1-1)에 연속으로 비긴 데 이어 월드컵 예선 역사상 최초로 일본에게 패배(0-1)하는 등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선수단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이라크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할 경우 본선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일본이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 2-2로 비기며 스스로 무너진 덕분에 한국은 어부지리로 지역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북한과의 최종전에서 3-0으로 승리하고도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한국 선수들이 일본의 경기 결과를 전해듣고 함성을 터뜨리는 모습은 국민 모두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오늘날까지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도하의 기적'이었다.
예선을 천신만고 끝에 돌파한 한국은 정작 본선에서는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첫경기인 스페인전에서 0-2로 끌려가다가 홍명보, 서정원의 연속골로 극적인 무승부를 이뤘고, 볼리비아에는 일방적으로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0-0으로 아쉽게 비겼다. 그리고 최종전인 독일전에서 전반에만 3골을 너주며 끌려갔지만 후반에 2골을 추격한 뒤 무서운 기세를 뽐내며 전차군단 선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비록 2무 1패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태극전사들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해 박수를 받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도쿄대첩과 마르세유 참사
천신만고 끝에 지역예선을 통과한 4년 전과 달리 1998 프랑스월드컵 예선에 출전한 한국은 이렇다 할 시련 없이 일찌감치 프랑스행을 확정지으며 신바람을 냈다.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대표팀은 홍콩 태국 등과 함께 치른 1차예선을 3승1무로 가볍게 통과했다. 이어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 등과 함께 한 최종예선에서도 두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경기 종료 7분 전까지 0-1로 뒤지다 최용수와 이민성의 연속골로 대역전승을 일군 일본과의 3차전 원정경기는 '도쿄대첩'으로 불리며 한국축구를 빛낸 명승부로 주목받았다.
한국은 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 등 강한 팀들과 만났다. 멕시코전에서 하석주가 프리킥으로 선취골을 넣었지만 곧바로 상대 수비수에게 백태클을 걸었다가 퇴장당해 그 후유증으로 1-3으로 역전패했다.
그러나 더 큰 참사는 네덜란드전에서 나왔다. 한국은 개인기, 체력, 전술 등 모든 면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며 0-5로 대패했다. 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헝가리에 0-9로 패한 이후 가장 큰 점수차였다. 이 여파로 차범근 감독이 도중에 경질되는 극약 처방을 내려야했다. 다행히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는 1-1로 비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꿈은 이뤄진다. 4강 신화 이룬 2002년 월드컵
2002년 한국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을 공동개최했다. 두 나라는 최신 시설을 갖춘 대형 경기장들을 완성했고, 통신, 교통 등 각종 인프라 면에서 완벽한 준비 과정을 뽐냈다. 한국은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를 감독으로 선임한 뒤 2년 여에 걸쳐 착실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4강 진출이라는 '기적'으로 표출됐다.
한국은 폴란드와의 첫판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연속골로 2-0으로 완승했고, 두번째 경기인 미국전에서는 첫골을 내줬지만 안정환의 동점골로 1-1로 비겼다. 그리고 유럽 강호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가슴 트래핑에 이은 그림 같은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한국이 16강에 오른 것은 일단 1차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과 태극전사들은 결승 토너먼트에서 더욱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에 연장전 끝에 2-1로 역전승을 거뒀고,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는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하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4강 진출의 꿈을 이뤘다.
비록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0-1로 져 연승행진은 멈췄지만 지구촌 축구팬들의 깜짝 놀라게 만들고, 48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낸 역사상 최고의 쾌거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예선은 부진, 본선은 선전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한 2002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은 이후 나선 2006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경험했다. 축구팬들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탓에 대표팀의 경기력이 꾸준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고, 이로 인해 사령탑이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에서 박성화 감독(대행)으로, 다시 조 본프레레 감독으로 바뀌는 등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2차예선에서 한 수 아래로 여긴 몰디브에 0-0으로 비겨 우려를 낳았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 등과 함께 치른 최종예선에서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맞대결에서 홈(0-1패)과 원정경기(0-2패)를 모두 내준 건 본선행을 성사시킨 본프레레 감독이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지휘봉을 물려주고 퇴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아드보카트에게는 지휘봉을 잡은 뒤 월드컵 본선까지 아주 짧은 시간 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핌 베어벡이 수석코치를 맡아 아드보카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한국은 독일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아프리카의 토고를 상대로 2-1로 역전승하며 월드컵 원정 첫승의 소중한 열매를 맺었다. 이어 유럽 강호 프랑스를 상대로 앙리에게 선취골을 내줬지만 박지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1-1 무승부의 '대어'를 낚았다.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가 컸던 스위스와의 최종전. 그러나 한국은 실력차를 실감하며 0-2로 져 조 3위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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