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과 딥 토크 2] 꿈은 크고 높아야...국가 대표 감독 목표

김삼우 기자I 2007.08.12 09:10:10
▲ 서정원 [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꿈은 높고 큰 게 좋지 않습니까?”
‘국가대표 감독을 목표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서정원의 답변이었다. 분명하게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지도자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그로선 국가대표 감독이 당연한 목표일 것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시절 만난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보면서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지휘봉을 잡게 된다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아시안컵때의 한국 대표팀, 그리고 핌 베어벡 감독의 사퇴와 박성화 감독 홍명보 코치 체제가 선임된 올림픽 대표팀 코칭 스태프 구성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그의 생각을 밝혔다.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는 이로서의 시각과 위치에서였다.

▲아쉽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었던 베어벡,.
우선 자진 사퇴한 핌 베어벡 감독에 대한 그의 평가는 썩 높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 코치 생활을 오래 하면서 한국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1년만에 그만 둔 부분은 아쉽죠. 자신의 축구를 구현하기에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 내용은 분명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그가 지도자로서 평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프로 감독은 물론 국내 전문가들과 자주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좋지 않았구요. 큰일을 하기에는 조금...”

▲반드시 외국 지도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가대표 사령탑에 외국인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대표 감독으로 영입할 정도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장일 것이기 때문에 배울 점은 많을 것입니다. 축구에 대한 마인드부터 시스템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플러스 요인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이나 남미와 문화가 많이 틀립니다. 문화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런 게 있어요. 우선 외국인 지도자들은 한국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독특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데 또 시간이 걸리죠.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반면 국내 지도자는 선수들에 대한 파악은 기본으로 되어 있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죠.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축구에 대한 지식 등에서는 외국 지도자에 떨어질 수 있죠. 그렇다고 외국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유럽축구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국내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림픽 대표팀 박성화-홍명보 체제는 이해해야 할 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대표팀 코칭 스태프 선임 과정에 대해선 그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박성화 감독은 능력이나 자격면에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충분한 지도자입니다. 다만 부산 감독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리를 옮겨 문제가 되지만 급박한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라를 위해 큰 일이 있다고 부르는데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때 홍명보 감독-서정원 코치 체제가 거론된 것을 묻자 조금은 어이없어 했다.
“어떤 기자분이 혹시 코치로 가는게 아니냐고 묻길래 웃어 넘겼거든요. 근데 바로 기사화되더라구요. 사실 그런 부분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그런 일을 할만한 능력도 안되거든요. 명보 형은 잘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바뀌는 와중에 고생도 많이 하고 있죠. 그만큼 명보 형을 믿고 따르는 선수와 팬들이 많습니다. 조금 더 고생하시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홍명보 퇴장당한 한일전 분위기 이해하고도 남아...요즘 선수들과 다른점
홍명보 올림픽 감독 대세론이 꺾인 가장 큰 이유로 제시된 2007 아시안컵 한일전 퇴장건에 대해선 그는 홍 코치를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우리 때만 해도 한일전은 어디가 부러져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언론, 선배 들 모두 한일전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죠. 선수들의 각오도 그랬습니다. 정신적인 부담감은 두배였습니다. 그라운드에 서면 우리 선수들의 눈동자부터 일본 선수들과 차이가 났습니다. 압도했죠.

이러니 질수가 없었습니다. 공을 다투는 상황에선 부러지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다리를 갖다댔습니다.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일전에서 지면 죽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라가 부른다면, 원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있었습니다. 요즘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도 많지만 예전에는 명예밖에 없었습니다. 신세대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동료 선배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 

▲ 서정원 [사진=김정욱 기자]

▲지도자 수업은 맨유 같은 명문 클럽이 아닌 레딩처럼 크는 팀에서
지도자 수업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와 함께 유럽 각국 클럽들을 순회하면서 지도자, 관계자와 직접 미팅을 통해 노하우를 익히는 일을 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등 명문 클럽 등을 우선 찾지는 않을 계획이다.

“톱 클래스의 팀들은 최고의 선수들을 최고의 감독이 이끌고 있습니다. 성적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죠.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런 클럽들을 우선 보고 싶어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중간 정도나 하위 수준의 팀들 가운데 어려운 상황에서 치고 올라오는 팀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각 리그마다 그런 팀들은 언제나 있거든요.

어떻게 팀을 끌어 올리는지, 감독은 선수단을 어떻게 이끄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얻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그런 팀들과 연락을 해서 미팅도 하고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심리학
지도자 공부는 딱히 몇 년이라고 정해놓고 있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여러 클럽을 다니면서 보고 배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시간이 나니까’라며 모든 것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리고 그는 심리학을 강조했다. 그동안의 선수 생활, 특히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절실하게 그 필요성을 느낀 듯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럽 클럽들의 훈련 프로그램은 비슷합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죠. 특히 주목할 것은 심리학을 중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명문 클럽들은 대부분 심리 전문가를 활용, 또 다른 것을 이끌어 냅니다.

가령 심리 전문가들은 매 경기를 직접 보면서 선수들의 행동을 파악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경고를 받고, 또 실수를 하는지 우선 그라운드에서 지켜 봅니다. 그 상황을 알아야 선수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처방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팀이 좋을때와 그렇지 않을때 그 이유를 선수들과 토론하고 선수들의 의향을 들으면서 리포트를 작성하면 감독이나 선수 모두 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사실 감독이 이 모든 일들을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파악하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이럴때 심리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죠.

사실 이런 심리 전문가는 한국 축구에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한국 축구는 유럽에 비해서 지도자와 선수간에 벽이 높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선수들이 가진 것을 120% 발휘하게끔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전문가는 국가대표급 뿐만 아니라 학원 스포츠에도 보급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
그는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고 했다. '국가대표 감독이 목표인가'라는 물음에 내놓고'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그렇게 세우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 가슴에 태극기를 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처럼 멀리, 그리고 크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비단 축구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 종사하건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계속 노력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지도자 공부를 마치고 돌아 올때는 뭔가 잡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죠. 그리고 팀을 맡으면 항상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팬이 없으면 축구가 살수 없으니까요.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섰을때 팬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경기력에 차이가 납니다. 관중석이 썰렁하면 맥이 풀리지만 가득차 있으면 없던 실력까지 나옵니다. 이것도 심리적인 측면이죠.”

여기서 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K리그에 실망스러워 하는 팬들에게는 경기장을 한번이라도 더 찾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오면 선수들의 플레이도 달라지니까요.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면 그만큼 K리그 수준도 올라갑니다.”

서정원은 주위 사람들이 유럽에서 지도자 공부를 한다고 하면 부러워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했다. 강하게 마음을 다져 놓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고 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스포츠 생리학, 심리학 등의 어려운 용어도 익혀야 하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자신을 불러준 옛스승 김호 대전 감독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조만간 인사를 하러 대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서정원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는 점이다. 매사 좋은 점만을 찾아 받아들이려 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몇 년 후 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축구가 바라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서정원은 당초 지난 8일 오스트리아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밀려드는 행사 초청을 마다할 수 없어 오는 28일께로 출국 일정을 미뤄 놓았다.

◇서정원은 누구?
생년월일: 1970년 12월 17일
출생지: 경기도 광주
키: 173㎝ / 체중: 67㎏ / 혈액형: AB형
취미: 여행, 음악감상
존경하는 인물: 데트마르 크라머 (92년 올림픽 한국 대표팀 감독)
가족: 부인 윤효진(34)씨와 아들 셋

출신교: 남한산초-연초중-거제고-고려대
대표 경력:청소년(1987~1988) 올림픽(1992) 월드컵(1994, 1998)
프로 경력:럭키 금성(1992)-프랑스 스트라스부르(1997~1998)-수원 삼성(1999~2004)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2005)-오스트리아 SV 리트(2005~2007)

A매치 데뷔: 1990년 7월 27일 다이너스티컵 일본전
A매치 데뷔골:1990년 9월9일 호주와의 평가전
A매치 기록: 85경기 출전, 16골
K리그 기록: 269경기 출전 68골 25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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