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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롯데자이언츠에서 1번의 의미는 더 크다. 롯데를 대표하는 ‘전설의 도루왕’ 전준호 전 롯데 코치(현 동의과학대 코치)거 현역 시절 달았던 번호이기 때문이다. 전준호 코치는 1번을 달고 통산 549도루를 성공시켰다. 지금도 역대 최다 도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여러 선수가 1번에 욕심을 냈지만 결국 황성빈이 차지했다. 전준호 코치의 뒤를 잇는 ‘도루왕’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런데 2024시즌과 함께 기껏 힘들게 따낸 등번호 1번을 포기했다. 대신 ‘0번’을 달았다. 0번은 지금은 롯데를 떠난 재일교포 안권수가 달았던 번호다. 이제는 그 번호를 황성빈이 물려받았다. 안권수를 잊지 않고 그의 몫까지 해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황성빈과 안권수는 지난 시즌 테이블세터로 함께 호흡을 맞춘 적도 여러 차례다. 외야 경쟁자였던 동시에 함께 외야를 나눠 책임지기도 했다. 나이는 안권수가 4살 더 많았지만 자연스럽게 가장 친한 사이가 됐다. 안권수가 운영하던 유튜브에 황성빈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안권수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동안 황성빈은 “형(안권수)의 자리까지 채우겠다”며 안권수의 팔꿈치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 안권수는 더이상 롯데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황성빈의 유니폼에는 안권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4일 한화이글스와 원정경기에 앞서 만난 황성빈은 “(안권수)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등번호 0번을 선택했다”며 “최근에도 계속 형과 연락하고 있다. 요즘 육아 때문에 바쁜 것 같더라”고 말했다.
안권수와 우정에서도 잘 나타나듯 황성빈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등번호 하나조차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 선택한다. 사실 그는 야구선수로서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체격이 작고 파워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재능을 타고난 편도 아니다. 대신 빠른 주력과 주루 능력을 갖췄다. 그것이 야구선수로서 살아남을 본인만의 무기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출루를 하게 되면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흔들고 괴롭히려고 한다.
최근에는 그런 스타일이 오해를 빚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광주 KIA전에서 1루에 출루한 뒤 계속 2루 도루를 시도하려는 동작을 반복적으로 취하며 마운드에 있던 양현종을 흔들었다.
순간 양현종의 굳은 표정이 TV 중계화면에 잡혔고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발빠른 주자가 투수를 흔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옹호론과 투수를 자극한 것이 선을 넘었다는 비판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정작 양현종은 황성빈을 두둔했다. “조금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최대한 동요하지 않으려 했다”며 “그게 황성빈 선수가 해야 할 임무다. 그런 플레이가 황성빈의 트레이드마크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성빈은 직접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힘들게 진심을 털어놓았다. “그날 이후 많은 분이 따라 하고 SNS에도 많이 올라오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황성빈은 “누구를 자극하거나 도발하려고 한 행동이 결코 아니었다”며 “남들이 보기에 웃길지 모르지만 난 진지하게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순간 집중하고 열심히 할 뿐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