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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시선] 누가 국가를 '대표'해야 하는가

스포츠팀 기자I 2023.12.03 09:10:07
최근 전 연인과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공격수 황의조. 사진=연합뉴스
[안준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태극마크를 단다.’ 스포츠 선수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업으로 삼는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가대표를 목표로 할 것이다. 국가대표로서 올림픽과 같은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장면을 꿈꿀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다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함축돼 있다. 국가가 보증한 실력, 여기에 따른 명예를 얻을 수 있다. 단순히 명예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거나 인상 깊은 활약을 보이면, 좋은 조건에 해외 무대로 진출하거나 방송, CF 출연 등 인기와 부를 얻기도 한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자리인 만큼 실력뿐 아니라 국가대표로서 책임감과 도덕성이 요구된다. 특히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축구선수 황의조(31·노리치 시티)를 보면 더 그렇다. 대한축구협회 윤리위원회는 불법 촬영 혐의의 피의자로 입건된 황의조에 대해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황의조 논란’은 지난 6월 황의조의 성관계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하며 발생했다. 당시만 해도 해당 동영상을 일방적으로 퍼뜨린 유포자에 대한 공분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촬영이 불법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이 포착돼 황의조는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쟁점이 되는 불법 촬영 여부에 대해선 황의조 측과 영상 속 여성 측의 의견이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 와중에 황의조는 지난달 21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중국전 후반 27분에 교체 출전하며 논란이 가중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이유로 들며, 황의조 기용에 대해 해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범죄 혐의가 있지만, 범죄를 저질렀다고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론의 역풍은 거셌다. 결국, 축구협회는 여론에 무릎을 꿇었다.

사회적인 물의, 구체적으로 범죄에 연루된 선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개인적인 일탈, 징계, 범죄 연루에 따라 국가대표가 박탈되거나 정지되는 일은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프로야구 선수 안우진(24·키움)은 2017년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폭로가 나온 지 3개월 만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국가대표 자격정지 3년을 받았다. 3년 이상 자격정지를 받으면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라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주요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사실상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가 없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사실이 폭로돼 비난의 중심에 섰던 여자 배구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국가대표 자격이 영구 박탈됐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김민석, 정재웅, 정재원, 정선교도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선수 자격이 정지됐다. 이들은 대표팀 훈련 기간 중 진천 선수촌 인근에서 음주 및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켰고, 사법처리를 받았다.

강력 범죄에 연루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국가대표에서 쫓겨나는 것은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프랑스축구협회도 간판 공격수 카림 벤제마(36·알 이티하드)가 성관계 동영상을 이용해 팀 동료를 협박했다는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르자 6년 동안 대표팀에 불러들이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안토니도 지난 9월 여자친구를 폭행했다는 논란에 휘말린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브라질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다만 범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한국의 정서가 너무 민감하고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범죄 혐의에 대해 사실관계의 대립이 있는 경우, 그리고 해당 범죄가 확정이 되지 않은 경우에도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클린스만 감독도 언급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국가대표 기회를 영구히 박탈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중대 범죄 등에 따라 자격을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도 경미하다고 판단되는 범죄를 저지른 선수의 경우에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국가대표로 선발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명확한 기준이다. 그리고 형평성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일괄적으로 적용해 처리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정립하고 논의할 필요성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 스스로 국가대표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대표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 영광을 생각하기보다는 국가대표에 걸맞는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서는 일반 대중에 모범이 될 수 있는 의무감도 갖춰야 한다. 이는 체육 단체 차원에서 국가대표로서 갖춰야 할 글로벌 에티켓, 사회적 책무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국가 이미지, 국가 브랜드를 제고하는 중책을 지녔다고 의식해야 한다. 민간 외교를 멀리 찾을 필요가 없다. 스포츠 분야에서 국가대표의 경쟁과 우호 증진을 통해 국가 이미지나 국가 브랜드가 상승하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적 인물들이 국가대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또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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