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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한 30분 중 20분 넘게 아내 이야기만 한 골프 선수가 있다. 바로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처음 제네시스 대상을 받은 함정우(29)다. 함정우는 올해 우승을 한 것도, 제네시스 대상을 받은 것도 모두 아내 강예린(29) 덕분이라고 말한다.
함정우와 강예린은 ‘투어 선수 1호 부부’다. 강예린은 작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지난해 3월 6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고, 올해 3월 첫딸 소율이를 얻었다. 함정우는 행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올해 중반까지만 해도 남모를 마음고생을 했다. 7월까지 12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은커녕 톱10에 2번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건 아내 강예린이었다. 대회가 없던 8월 한 달 동안 이들 부부는 함정우의 본가인 천안에서 함께 생활했다. 함정우가 연습하는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이 천안에 있어서다. 용인 집에서 천안까지 출퇴근하는 시간을 아끼고 연습에 매진하자는 뜻에서 강예린이 제안했다. 강예린은 일주일에 4일간 시부모 집에서 생활하며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함정우는 새벽 5시부터 골프장에 올라가 연습했고 가장 더운 낮 1시에 근처 호수공원을 뛰었다. 땡볕 아래서 최대 5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이 또한 끈기 훈련을 위한 강예린의 아이디어다. 강예린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매일 같이 뛰며 남편을 서포트했다.
함정우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저의 터닝포인트는 정말 아내의 내조 덕분”이라며 “(강)예린이가 시댁에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모든 걸 감수해줬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또 “한여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한 만큼 뛴 덕분에 지구력을 키울 수 있었다. 멘털까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걸 함께 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여름 지옥훈련의 효과는 눈에 띄게 결과로 나타났다. 10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2년 만에 KPGA 코리안투어 통산 3승째를 거뒀고, 생애 처음으로 제네시스 대상까지 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하반기 10개 대회에서 우승을 포함해 톱5만 7번을 기록하는 최정상급 기량을 과시했다. 함정우는 “아내 덕분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게 됐다. 아내는 저를 더 좋은 선수로 발전시켜 주는 사람”이라며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또 함정우는 “저를 위해 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한 예린이를 위해서라도 제가 더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강예린은 첫 아이 소율이를 임신하면서 투어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KLPGA에 육아 휴직을 낼 수 있는 시기가 맞지 않아 시드 유예도 불가능해졌고, 결국 투어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함정우는 “사실 예린이도 자신의 꿈이 있을 텐데 이제는 아내 인생에 저와 아기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강예린의 반응은 어떤가’라고 묻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방에 누워만 있냐’고 지적한다”는 유쾌한 답이 돌아왔다.
이제 함정우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다음달 3일 아부다비로 출국해 8일부터 시작되는 리브(LIV) 골프 프로모션 대회에 출전한다. 이후 바로 미국으로 이동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도 치른다. 내년 상반기에는 유럽 DP 월드투어에 도전한다. 이런 도전이 가능한 건 그가 제네시스 대상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함정우는 부상으로 PGA 투어 Q 스쿨 최종전 직행 자격과 DP 월드투어 시드 1년 등 해외 투어 진출 기회를 얻었다.
함정우는 “워낙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제 앞에 놓인 새로운 계획들이 설렌다”며 “부상으로 보너스 상금 1억원도 받았는데 해외투어 경비에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6년 만에 코리안투어에 적응해 대상을 받았으니 다음 6년은 미국, 유럽에서 자리 잡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