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격 조건이나 파워가 특별히 대단하진 않았다. 하지만 뛰어난 두뇌 플레이와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테니스를 예술의 경지에 끌어올렸다. 특히 투핸드 백핸드가 대세가 된 오늘날 테니스에서 특유의 원핸드 백핸드는 ‘명품’으로 평가받는다.
페더러의 최다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 기록(20회)은 라이벌인 라파엘 나달(스페인.22회)과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21회)에게 밀려 3위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메이저 20회 우승 최초 달성, 메이저 대회 최다 승리(369승) 기록은 여전히 페더러의 위대함을 잘 보여준다.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던 페더러의 최고 명승부 5경기를 통해 그의 화려했던 테니스 인생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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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6살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한 페더러는 17세 때인 1998년 윔블던 주니어 단식을 제패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1999년부터 성인 무대로 옮겨 메이저 대회에 도전했고 2003년 윔블던 대회에서 메이저 대회 단식 첫 우승을 달성했다.
이형택을 3-0으로 이기고 1회전을 기분 좋게 출발한 페더러는 이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4강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앤디 로딕(미국)을 3-0으로 이긴데 이어 결승에서 2m에 육박하는 장신 마크 필리포시스(호주)까지 3-0으로 제압하면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3년 윔블던 우승은 페더러가 보유한 통산 20차례 메이저 대회 우승과 8차례 윔블던 우승 대기록의 출발점이었다. 페더러 개인에게는 메이저 대회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페더러는 이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기록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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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했던 페더러의 선수 인생에서도 아픈 구석은 있다. 바로 프랑스 오픈이었다. 페더러가 이룬 20차례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 가운데 프랑스오픈 우승은 단 한 번뿐이었다. 통산 5번 결승에 진출했지만 4번은 준우승에 그쳤다. 그 준우승 4번 모두 ‘흙신’ 나달에게 막힌 것이었다. 페더러에게도 클레이코트에서 나달을 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2009년 페더러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회 5연패를 노렸던 나달이 4회전에서 로빈 소더링(스웨덴)에게 1-3으로 덜미를 잡힌 것.
페더러는 나달만 아니라면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결승에서 소더링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누르고 생애 첫 프랑스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페더러의 유일한 프랑스오픈 우승 순간이었다.
이미 호주오픈 3회, 윔블던 5회, US오픈 5회 우승을 달성했던 페더러는 이 우승으로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역대 네 번째이자 오픈 시대 이후 안드레 아가시 이후 두 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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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달과 조코비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페더러의 최대 라이벌은 로딕이었다. 선수 인생 전체로 놓고 볼 때 로딕이 남긴 업적은 페더러와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기만 놓고 보면 당시 미국 테니스를 대표했던 로딕은 페더러의 최고 맞수로 손색없었다.
특히 2009년 윔블던 결승전은 페더러와 로딕이 펼친 최고 명승부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당시 로딕은 1, 4세트, 페더러는 2, 3세트를 떠내 세트스코어 2-2 동점에서 마지막 5세트로 접어들었다. 5세트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마라톤 승부였다. 페더러가 로딕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고 4시간이 훨씬 넘는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스코어보드에 적힌 숫자는 16-14였다.
이 승리로 페더러는 1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뤘다. 당시 피트 샘프라스(미국)가 보유했던 최다 우승 기록 14회를 뛰어넘는 신기록이었다. 당시 28살에 불과했던 페더러가 세계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쓰는 순간이었다.
당시 샘프라스는 “내가 은퇴할 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페더러는 불과 7년 만에 나를 넘어섰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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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는 개인 17번째 메이저 우승 타이틀이었던 2012년 윔블던 우승 이후 4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고질적인 부상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더 젊고 힘과 패기가 넘쳤던 나달과 조코비치가 페더러를 제치고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페더러의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페더러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릎, 허리 부상을 극복하고 돌아온 페더러는 2017년 호주오픈과 윔블던을 석권,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이어 2018년 호주오픈 결승에서도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마침내 20번째 메이저대회 우승 대기록을 수립했다.
그전 마가켓 코트, 슈테피 그라프, 세리나 윌리엄스 등 여성 선수가 메이저대회 20회 우승을 달성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훨씬 경쟁이 치열한 남자 테니스에선 페더러가 처음이었다 세계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쓰는 순간이었다.
한 달 뒤에는 만 36세 나이로 테니스 세계 랭킹 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고령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 호주오픈은 페더러의 테니스 인생에서 마지막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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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8살의 페더러는 전 세계 테니스팬들을 다시 한번 흥분시켰다. 이미 전성기가 훌쩍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결승까지 진출한 것.
결승전 상대는 당대 최강 조코비치였다. 페더러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조코비치와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1세트와 3세트를 내줬지만 2세트와 4세트를 이기고 승부를 5세트로 끌고 갔다.
페더러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윔블던 우승을 함께 하려는 팬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본의 아니게 조코비치는 빌런이 됐다. 5시간에 이르는 승부 속에서 페더러의 체력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투혼을 발휘해 5세트를 타이브레이크로 끌고 갔다.
하지만 타이브레이크에서 끝내 조코비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12-13으로 패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페더러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 결승이었다. 최고의 명승부였지만 동시에 그의 시대가 마무리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경기였다.
스포츠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 그래도 만약 나달, 조코비치가 없었다면 페더러는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페더러는 개인 통산 11차례 메이저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가운데 네 번은 조코비치에게, 여섯 번은 나달에게 우승을 양보했다. 특히 페더러는 조코비치와 메이저대회 결승전에서 5번 만나 1번 밖에 이기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