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흔셋의 노배우는 지난 달 한국배우 최초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데 이어 또 한 번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한국배우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윤여정의 이야기다.
윤여정은 5일 오전 10시(이하 한국시간) 수상자(작)가 발표된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에 호명됐다. 윤여정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남부의 아칸소라는 시골 마을로 이주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미나리’에서 어린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오는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했다.
윤여정은 화상 연결을 통해 “매우 영광스럽다”며 “특히 동료 배우들이 저를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선택해준 것이 더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지금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며 미국배우조합과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소감 말미에 가슴이 벅차오른 듯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런 윤여정의 모습을 화상으로 지켜본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보랏2’의 마리아 바카로바 등 배우들이 박수를 보내며 함께 기뻐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윤여정은 이로써 오스카 수상에 또 한 번 성큼 다가섰다. ‘미나리’는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고, 윤여정은 일찌감치 여우조연상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배우로는 최초의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아시아 배우로는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이다.
윤여정은 앞서 지난 2일 미국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일흔셋의 아시아 여성이 오스카 후보에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후보에 오른 것을 두고) 마치 나를 축구선수나 국가대표로 보는 것 같은데 이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이혼으로 한때 활동이 순탄치 않았던 윤여정은 열등감과 사회적 편견을 딛고 영화 인생 50년에 개인의 영광은 물론 한국영화계에 기쁨을 주고 있다.
미국배우조합상은 영화와 TV에서 활약하는 미국 배우들이 동료 배우들을 대상으로 상을 주는 시상식이다. 미국배우조합(SAG)에서 주최한다. 미국배우조합상은 미국작가조합상, 미국감독조합상, 미국제작자조합상과 함께 4대 조합상에 꼽힌다. 이 회원들이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8000여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아카데미 향방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외신들도 앞다퉈 “윤여정이 SAG 영화부문에서 수상한 첫 아시아 배우가 됐다”(할리우드 리포터) “윤여정이 오스카 레이스에서 중대한 위협으로 부상했다”(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미나리’에서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준 윤여정이 이 상을 받은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며 오스카에서도 반복될 것이다”(인디와이어) 등 보도를 했다.
윤여정이 ‘미나리’로 이번 수상에 앞서 LA, 워싱턴 DC,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온라인,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오클라호마,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뮤직시티, 노스캐롤라이나, 노스텍사스, 뉴멕시코, 샌디에이고, 아이오와, 콜럼버스, 사우스이스턴, 밴쿠버, 디스커싱필름, 미국 흑인 비평가협회와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 골드 리스트 시상식,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 등 총 36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도 아카데미 수상의 청신호다.
이날 미국배우조합상의 영화부문 연기상은 모두 유색인종에게 돌아갔다. 영화부문 남녀주연상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고 채드윅 보스만과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수상했고, 영화부문 남우조연상은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대니얼 칼루야가 수상했다. 최고상인 앙상블상은 196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와 관련해 법정 실화를 다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이 차지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LA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