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던진 화두]① '젠더 이슈'로 불붙은 래퍼들

산이와 제리케이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힙합계 디스전이 다시 펼쳐졌다. 래퍼 산이가 지난 16일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의 랩을 유튜브에 올리자 제리케이가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이라는 랩으로 산이를 공격했다. 래퍼 슬릭도 산이를 겨냥해 디스전에 뛰어들고 산이는 제리케이에 맞대응을 하면서 싸움이 격해지는 양상이다.

한국 힙합신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가리온 MC메타는 19일 이데일리에 “산이와 제리케이 모두 그 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랩을 통해 쭉 해온 사람들”이라며 “이번 디스전도 그런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 같다. 개인의 성향이 발동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디스전은 국내 힙합신에서 지난 2013년 벌어져 힙합신의 성향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디스전과도 차이가 있다. 사회적 이슈가 소재라는 점에서다.

2013년 ‘디스전’은 ‘컨트롤 대란’으로 불린다. 이센스가 대마초 흡연 사건 당시 소속사 내 갈등과 소속사를 나오면서 든 생각들을 소재로 같은 소속사였던 개코를 ‘유 캔트 컨트롤 미’(YOU CAN’T CONTROL ME)라는 노래로 공격한 게 발단이었다. 이센스는 미국 켄드릭 라마가 다른 유명 래퍼들을 디스한 ‘컨트롤’의 비트를 사용하고 제목에도 ‘컨트롤’을 넣었다.

개코가 ‘I CAN CONTROL YOU’라는 노래로 반격하면서 불이 붙었다. 이에 이센스가 다시 랩으로 답을 하고 스윙스는 이센스와 친한 사이먼디는 왜 나서지 않느냐고 디스를 하면서 디스전이 확대됐다. 개인 간의 관계를 랩으로 풀었다.

이번 디스전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젠더 이슈’에서 비롯됐다. 젠더 이슈에 대한 하나의 논란을 촉발시킨 지난 13일 서울 이수역 인근 맥주집에서 일어난 남성 3명과 여성 2명의 폭행 사건이 발단이 됐다. 산이는 사건 당시 영상을 SNS에 올린 데 이어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랩으로 밝혔고 제리케이와 슬릭은 산이의 랩 가사에서 사용된 표현들이 편향됐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제리케이와 슬릭이 산이의 군면제 등을 이유로 ‘말할 자격’을 거론했고 산이도 여기에 반박하면서 제리케이를 공격했지만 중심은 ‘젠더 이슈’였다.

이들의 디스전은 남혐, 여혐으로 나뉘어 이뤄지고 있는 소모적인 논쟁에 또 한번 불을 지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양측의 눈치를 보느라 유명인들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던 민감한 사안을 끄집어내 논쟁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MC메타는 “래퍼들이 랩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흔히 있다”며 “이를 두고 논란의 여지를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이재원 한양대 겸임교수는 “거칠고 공격적인 화법으로 인해 싸움 형태로 비춰지고 있지만 이번 디스전은 산이든 제리케이든 자신들의 생각을 랩으로 옮긴 것”이라며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이제 대중의 몫이다. 그 화두를 던진 것만으로도 산이와 제리케이의 디스전은 의미가 없지 않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