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니저다]②아이돌 매니저 A씨의 다이내믹 하루

김은구 기자I 2018.10.29 06:00:00
자신이 관리하는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지켜보는 매니저의 시선이 이런 것일까? 가수 매니저, 소속사들이 회원인 (사)한국매니지먼트연합 주최로 지난 8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케이스타 2018 코리아뮤직페스티벌’의 공연 모습.(사진=케이스타 2018 코리아뮤직페스티벌)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새벽 3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도 밤 11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이제 습관이 됐는지 일찍 일어나는 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오늘은 담당하고 있는 걸그룹의 생방송 가요순위프로그램 출연 스케줄이 있는 날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회사 대표님이 제작진과 ‘페이스미팅’을 거쳐 확보한 스케줄이다. 이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였지만 매번 출연할 수 있는 팀이 한정적인 가요순위프로그램 출연은 여전히 전쟁이다. 그런 스케줄에 만전을 기하려면 어쩔 수 없다. 새벽 4시쯤에는 미용실에 도착해야 한다. ‘로드’라고 불리는 현장 매니저들이 더 일찍 움직여 멤버들을 뷰티숍으로 데려갔을 시간이다.

나는 이제 7년 차 팀장 매니저다. 먼저 매니저 일을 시작한 고향 친구가 운전과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 적성에 잘 맞을 거라며 권유해 무작정 상경 후 업계에 뛰어들었다. 아직도 운전과 여행은 좋아하지만 일은 역시 일이다. 그래도 거의 종일 연예인을 수행해야 하는 로드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약간은 숨통이 트인다. 조금 느긋하게(?) 뷰티숍에 나가 배고프다고 하는 멤버들에게 편의점에서 샐러드와 음료 등 먹을 것을 챙겨주고 오늘 컨디션을 체크하면 된다.

멤버들과 함께 오전 6시 방송국에 도착했다. 음향과 안무 동선 등을 체크하는 드라이 리허설을 해야 한다. 비슷한 시간에 다른 가수들과 매니저들도 대부분 도착을 한다.

컴백 이후 몇주 강행군을 했더니 오늘따라 드라이 리허설에서 노래와 안무에 실수가 좀 있었다. “왜 이렇게 준비가 미흡해”라고 제작진에게 한소리 들었다. 우리 잘못이지만 기분이 좋을리 없다. 그렇다고 나이도 어린 데다 생방송을 앞두고 있는 멤버들을 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속은 좀 끓었지만 쓴소리보다는 ‘프로의식’을 강조하며 설명해주고 달랬다.

드라이 리허설 후 사전녹화가 없는 팀들은 대부분 휴식을 취한다. 3시간 가량의 여유. 다른 기획사 매니저들과 안부를 묻고 요즘 업계 돌아가는 상황들, 활동 스케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정보 수집도 중요하다. 회사에 오늘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하고 챙겨야 할 업무들도 전달을 받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카메라 리허설을 한 뒤 곧바로 생방송을 시작했다. 이번 활동 이후 처음으로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올랐다. 1등은 못했지만 그래도 뿌듯하다. 많은 타이틀곡 후보들 중 내가 작곡가에게 받아서 추천한 노래여서 더 기뻤다. 이 맛에 매니저를 한다. 멤버들뿐 아니라 내가 열심히 한 것도 모두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주위 매니저 선후배들도 격려를 해줬다.

방송 이후 행사가 예정돼 있다. 드물게 대구까지 행사가 잡히는 날도 있지만 오늘 장소는 경기도다. 경력이 있는 가수들은 행사 스케줄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가수들은 행사 스케줄을 아직까지 크게 거부한 적이 없는 것도 다행이다.

현장 매니저가 멤버들을 태워 출발하는 것을 보고 매니저 선배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1시간여 만에 현장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인데 퇴근길 교통체증이 심해 겨우 반 정도 갔다고 한다.

행사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순서를 뒤로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 주최측에서는 갑작스런 순서 변경에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펑크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싫은 소리는 듣겠지만 무대가 끝나면 서로 ‘고생했다’고 악수를 나누는 게 이 바닥이다.

집에 들어가는 길, 고향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당부다. 처음 매니저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연예인 가방 들어주는 사람’, ‘연예인 운전 해주는 사람’ 아니냐며 그게 무슨 직업이냐고 걱정을 하셨던 어머니다. 이제는 매니저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신다.

집에는 언제쯤 다녀갈 수 있느냐고 하신다. 로드를 하던 몇년간은 연예인 수행이 주요 업무다 보니 휴가는커녕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명절이나 돼야 잠깐 고향집에 들러 인사를 하고 나오는 수준이었다. 팀장이 된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지는 않다. 후회는 없다. 그런 과정이 하루 빨리 내가 제작 노하우를 쌓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뒤에도 방시혁 프로듀서와 함께 매니저가 있다. 아이돌 그룹 제작자는 요즘 가수 매니저들 대부분의 목표다.

회사 사무실에 들러 스케줄 등 업무 정리를 한 뒤 집에 들어오니 밤 10시다. 밤 11시 현장 매니저가 멤버들을 숙소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 다시 내일 새벽 나가기 위해 서둘러 잠을 청한다. 피로가 몰려온다. 늘 그렇지만 오늘도 다이내믹하게 하루가 지나갔다. 똑같은 날이 하루가 없는 것도 매니저라는 직업의 매력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주문처럼 머리 속에서 되뇌인다. 내 꿈은 미래 한류스타의 제작자다.

(△편집자주=아이돌 그룹들이 소속된 중견 기획사들의 6~8년차 팀장급 매니저들 인터뷰를 기반으로 그들의 하루 일과를 가상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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