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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男·구탱이형·천생배우...故 김주혁 오늘 발인

박미애 기자I 2017.11.02 06:00:00
고 김주혁(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로맨틱남이었고, ‘토사구팽’이 ‘토사구탱’이라며 빈틈 있는 친근한 형이었으며, 데뷔 20년차에 “이제야 연기가 재미있다”는 천생 배우였다.

지난 달 30일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한 고 김주혁 얘기다. 김주혁은 2일 오전 발인으로 팬들 곁을 떠났다. 작품 밖에서 전혀 배우같지 않은 배우였다. 옷 잘 입는 소문난 패셔니스타였지만 정작 자신을 꾸밀 줄 몰랐다. 그의 화법은 수사없이 싱거웠지만 솔직하고 진실했다. 자신의 말보다 상대의 얘기에 더 귀 기울였고, 상대를 더 빛나게 한 배우였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찾았다.

◇‘카이스트’(1999)

데뷔는 더 전이다. 그렇지만 김주혁을 알린 작품은 ‘카이스트’였다. 그는 박사과정 중인 학생으로 등장했다. 스마트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시청자들 중에는 그가 실제 카이스트 학생인 줄 아는 이도 있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분량이 늘었다. 이 작품으로 지적인 매력을 얻으며 인지도를 높인 김주혁은 그를 전성기로 이끈 로맨스 작품의 러브콜을 받는다.

‘싱글즈’
◇‘싱글즈’(2003)

김주혁은 장진영과 호흡 맞춘 영화 ‘싱글즈’에 출연한 후 인기가 나날이 높아졌다. 첫 눈에 반한 여자에게 적극 다가가는 잘나가는 증권맨으로 여성 관객에 셀렘을 안겼다. ‘싱글즈’의 성공은 그에게 로맨틱한 이미지를 부여했고, 그는 로맨스물이 선호하는 배우가 됐다. ‘싱글즈’를 비롯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 ‘프라하의 연인’(2005) 등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많은 여성 팬을 누렸고, 상대 여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멜로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자전’
◇‘방자전’(2010)

이전까지 로맨틱한 이미지가 강했던 김주혁은 춘향전을 재해석한 ‘방자전’을 계기로 변신을 꾀한다. 춘향에 반하는 몸종 방자로 과감한 노출과 야성적인 남성미를 발산했다. ‘방자전’은 에로틱 코미디 사극을 표방했지만 춘향을 향한 방자, 김주혁의 처절한 사랑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김주혁의 변화는 2008년작인 ‘아내가 결혼했다’(2008)부터 감지됐다. 김주혁은 이중결혼을 소재로 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파격적인 사랑과 사회적 통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통남자의 모습으로 판타지를 자극하는 로맨스물 속 완벽남의 이미지를 벗겨냈다.

‘구함 허준’과 ‘무신’
◇‘구암 허준’(2013)

김주혁은 ‘방자전’ 이후에 스크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적과의 동침’(2011) ‘투혼’(2011) 등이 실패했다. 그가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때 그가 훗날 털어놓은 슬럼프를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그는 안방극장으로 이동을 하는데 ‘무신’(2012)과 ‘구암 허준’으로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다.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가리지 않고 활동을 했지만 김주혁이 반 년씩 촬영을 이어가는 사극을 선택한 건 이례적이었다. ‘무신’ 때 그는 “더 늦어지면 못할 것 같았다”고 그 이유를 댔는데 작업이 고된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며 “당분간 사극은 사양”이라며 농담처럼 투정을 했었다. 그러고는 선택한 작품이 ‘구암 허준’이었다. ‘사극 안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멋쩍게 웃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구암 허준’을 선택한 건 부친인 고 김무생의 영향이 컸다. 김무생이 ‘집념’이라는 작품에서 허준을 연기해서 자신이 허준을 연기하는 것이 “운명 같았다”고 얘기했다.

‘1박2일’
◇‘1박2일’(2013~2015)

사극 이후에는 예능으로까지 이어졌다. ‘1박2일’은 김주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절명에 “일면식도 없는데 가까운 사람이 눈을 감은 것처럼 슬프다”고 데에는 국민 예능의 영향이 크다. 작품 속 이미지 때문에 빈틈 없고, 곁을 내주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는 ‘1박2일’을 통해 알고 보니 허술하고 속정 많은 인간미 넘치는 형이고 오빠였다. ‘1박2일’에 출연하는 2년간 ‘구탱이형’으로 대중과 가까이 소통했다. 연기를 위해서 ‘1박2일’를 하차할 때 시청자들은 멤버들 이상으로 아쉬워했다. 얼마 전 김주혁은 “‘1박2일’을 하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지금도 구탱이 형으로 불리는 게 좋다”고 멤버들과 프로그램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공조’
◇‘공조’(2017)

김주혁은 근 20년간 많은 인기를 누렸고 흥행도 했지만 유난히 영화로는 수상과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7일 ‘더서울어워즈’에서 ‘공조’로 첫 연기상(조연상)을 받았다. ‘비밀은 없다’(2015)로 첫 악역에 도전한 김주혁은 ‘공조’와 ‘석조저택 살인사건’(2017)에서 물오른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로맨스물에서 한없이 부드럽게 비쳤던 그의 쌍꺼풀 없는 눈매는 범죄물과 스릴러물에서 섬뜩하고 날카롭게 바뀌었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으로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해외 영화제 초청을 받으며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으로 만났을 때 김주혁은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며 “이제야 연기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연기에 대한 재미와 열정은 그를 소처럼 부지런히 일하게 했다. ‘아르곤’ 이후 그는 ‘독전’ ‘흥부’ ‘창궐’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었다. ‘독전’과 ‘흥부’는 촬영을 마쳤고, 특별출연인 ‘창궐’은 한 회만 촬영을 했다. 더 많은 작품, 더 많은 배역, 더 많은 얼굴을 기대됐던 배우 김주혁의 유작이 됐다.

‘제1회 더서울어워즈’에서 ‘공조’로 영화에서 처음 상을 받았다며 소감을 말하는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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