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지난 7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개막전을 지켜본 국내 팬들은 신지애 등 쟁쟁한 2위 그룹을 5타차로 제치고 우승한 안선주(23)의 모습에 놀랐다. 다른 여자선수에 비해 여전히 큰 체격이었지만, 지난해 모습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변해 있었다. 국내대회에서 쉽게 역전패를 허용하던 나약한 모습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다.
■"완전히 달라져야 해"
안선주는 지난 3개월여 동안 무려 10kg의 체중을 뺐다고 했다. 식사량을 4분의 1로 줄이고, 매일 자정까지 강한 체력훈련을 버틴 결과였다. 고기와 단 음식 등 살찔 만한 음식은 모두 좋아하던 그가 하루에도 수백번씩 "이거 하나만 먹으면 어떨까"하는 유혹을 참았다고 했다. 10kg을 빼고도 비거리가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근력 훈련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완전히 달라지는 거야. 조금 잘하는 것 갖곤 안 돼. 정말, 정말 잘해야 해." 지난해 12월 11일, 국내에서 7승을 올린 정상급 골퍼 안선주(23)는 난생처음 '인생의 결심' 같은 것을 했다고 한다. JLPGA 자격시험에서 공동 2위로 2010년 풀 시드를 따내고 일주일 뒤였다. 안선주는 퍼팅이 잘못되면 "(캐디를 보는) 아빠가 퍼팅 라인을 잘못 읽었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복잡한 일이 생겨도 태평스러워 보일 정도로 넘어가는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이랬던 그가 '나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독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8일 일본에 있는 안선주와 전화 연결이 됐을 때, 그는 "오늘도 인터뷰하네요"라며 싫지 않은 목소리였다. "국내에서 7승을 올렸을 때보다, 일본에서 1승을 올리고 이틀 동안 인터뷰 요청이 훨씬 많았다"고 했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국내에 있을 때 안선주에게는 누구도 딱 부러지게 말은 안 했지만, 너무나 뻔히 보이는 '벽'이 있었다. 2006년 신지애와 함께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에 데뷔한 이후, 그는 데뷔 첫해부터 매년 1~2승을 올리는 정상급 실력이었지만, 그를 주목하는 팬과 언론은 적었다. TV 생중계가 자리 잡은 KLPGA에서 '무조건 성적순'으로 선수들의 조를 편성하는 원칙이 2년 전부터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전까지 그는 통상 '나쁜 시간'에 1·2 라운드 플레이를 해야 했다. 프로선수들은 주로 TV중계에 잡히는 5개 조 정도의 '방송조'에 편성돼야 자신은 물론 후원사의 로고를 알릴 수 있다. 방송조 편성은 주로 성적을 위주로 하지만 최근에도 대회 주최측과 후원사의 '흥행' 논리로 바뀌기도 한다. 특히 여자 대회는 외모가 주요 변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TV를 의식해 많은 선수가 성형을 한다거나, 후원사들도 '미모' 위주로 소속선수를 뽑는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까지 안선주의 소속사였던 하이마트 관계자는 "안 프로가 조 편성을 보고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괴로운 심정이었다"며 "안 프로는 그런 면에서 보이지 않는 손해가 너무 컸다"고 했다. 심한 경우는 경기에 앞서 열리는 프로암 대회에서 빼 달라는 요청까지 나와 소속사가 '선수 전원이 출전을 보이콧하겠다'고 맞선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안병길씨는 "어느 날 풀죽은 선주에게 '너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모질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실력에 걸맞지 않은 대접을 받아 온 본인의 심정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안선주가 일본에서 기분 좋은 새 출발을 했다. 해외진출은 안선주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자마자 안선주는 첫 번째 단추도 멋있게 끼웠다. 박수를 보내는 일본 팬들 속에서 안선주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좀 서운하고 아쉽더라도 금세 잊는 성격이에요. 가능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늘 웃고 낙천적이던 안선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