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요즘 골퍼의 최대 화두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제한한 그루브일 것이다. 그루브는 헤드 페이스에 가로로 나 있는 홈을 말한다.
이 그루브로 인해 임팩트 순간 강력한 백스핀이 걸려 볼이 그린에 멈춰 설 수 있다. 우리가 골프중계를 보다보면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까지도 그린에서 강력한 백스핀이 걸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USGA와 R&A가 새롭게 적용시킨 규칙, 로프트 25도 이상 아이언의 그루브 폭을 기존보다 좀 더 좁고 얕게, 가장자리는 보다 둥글게 만들도록해 더 이상 강력한 백스핀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루브에 제한을 두는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 간의 변별력을 키우겠다는 미·영 협회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비틀어 보면 그 이면엔 우리가 모르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
1995년도 중반 느닷없이 국내 A골프장은 쇠징이 달린 골프화를 신고 코스에 나가는 것을 금지 시켰다. 쇠징은 그린 훼손은 물론 그린에 전염병까지 옮긴다는 이유에서였다.
A골프장이 외국 유명 골프장을 벤치마킹하고 온 후 쇠징 골프화를 금지시켰고 국내 나머지 골프장들도 모두 쇠징 골프화 착용을 금지시켰다.
쇠징 골프화 착용 금지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에까지 급속도로 번져갔다. 멀쩡한 쇠징 골프화는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고 골퍼들은 10만 원대 고무징 골프화를 새로 구입해야 했다.
바로 여기에 무서운 진실, 바로 상술이 숨어 있다.
당시 국내 골프인구를 100만명으로 추산했을 때 한 켤레당 10만원씩만 잡아도 어림잡아 100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일본, 유럽, 미국 시장을 합한 고무징 골프화 대체 비용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2006년도엔 그렇게 엄격했던 GPS 거리측정기를 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허용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영국왕립골프협회(R&A) 마저도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장한 GPS 거리측정기를 묵인해 협회가 상업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졌다.
2006년 또 하나의 규제는 드라이버 반발계수(COR)가 0.830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각 용품 업체들은 앞 다퉈 반발계수가 0.830을 넘지 않는 새로운 규정의 드라이버를 재빠르게 양산해 판매에 들어 간 적이 있다.
올 2010년 용품업체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바로 ‘새로운 그루브 규정’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냈다는 소위 타깃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권위적이며 골프계를 이끌고 가는 양대산맥 영국왕립협회와 미국골프협회의 ‘허용과 규제’의 내막을 살펴보면 교묘하게 상술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구르브 규정에 어긋나는 아이언은 새로 구입하고 고반발 드라이버도 바꿔야 하며 거리측정기기 역시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 물론 쇠징 골프화를 고무징 골프화로 전면 바꿔야 하는 매출 효과보다는 큰 기대를 할 수 없지만 아마추어 골퍼 역
시 제도권 내에 있는 클럽을 대부분 사용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눈총도 따갑고 왠지 부정을 저지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사실상 규제하고 있다.
양 협회는 용품의 발달로 골프장 거리를 늘리거나 용품을 제한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용품 제한이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프로골퍼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50대 나이의 국내 C선수의 경우 “아무리 용품이 발달한다고 해도 파4, 파5 골프장이 파3처럼 공략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내가 지금 50 초반의 나이지만 20~30대 선수들과 우승을 다툴 수 있는 것은 바로 용품의 발달 덕“이라며 긍정적적으로 답했다.
한편 '유럽의 신성'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새로운 그루브 규정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3일 AP통신에 따르면 매킬로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유러피언(EPGA)투어 오메가두바이데저트클래식 개막을 하루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골프협회(USGA) 등 골프 규칙 제정 관련 기구들은 그루브 규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러피언 투어에서 활동하는 매킬로이는 " 그루부 규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용품 보다는 골프장의 그린 경사나 러프 길이에 대한 규정을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하다“면서 그루브 제한을 강력히 비판했다.
최경주 프로는 아직도 고무징 골프화 보다는 쇠징 골프화를 선호한다. 외국대회에서 최경주프로는 종종 쇠징골프화를 신는다. 아직도 미국투어에서는 약 30%의 선수들이 쇠징 골프화를 선호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린 오픈대회에선 외국 선수들이 쇠징 골프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고무징 골프화로 갈아신고 출전해달라고 요구하는 골프장 측과 선수들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국내 골프장 코스관리부 직원들은 ”쇠징골프화보다 고무징 골프화가 그린 훼손 정도와 답압률에서 더 나쁘다”고 말한다. 다만 고무징이 코스와 클럽하우스 시설물을 보호하고 딱딱한 바닥에서 소음이 적을 뿐이라는 것이다.
용품에 대한 ‘규정과 허용’은 골프 경기가 있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골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골프용품이 잘 팔려야 한다. 그러니 몇 년 후엔 다시 고반발, 그루브 ,헤드 크기 460CC 이상의 클럽 허용이 이어질 수 있고, 샤프트와 퍼터 길이 제한 등의 규제가 이어질 수도 있다.
‘허용 하느냐’ ‘규제’하느냐에 따라 전 세계 골프시장이 들썩인다. 업체는 새로 만들고 골퍼는 새로 구입해야하는 숙명적인 관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골프용품의 ‘규제와 허용’ 속엔 골프계의 흥망이 동시에 담겨 있다.
◆ 이종현은 누구?
1989년 문학예술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한 시인이다. 문예창작학과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그는 전업작가의 길을 가려 했으나 시한부 삶의 부친 소원을 들어 모 신문과 모 여성지 연예부 기자로 첫 명함을 만들었다. 1990년 레저신문으로 옮겨 현재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1991년 국내 최초의 골프콩트집 ‘성적보고서’, 2004년 ‘골프마니아 비하인드 스토리’ ‘골프와 Y 우연과 필연’, 2008년 ‘시가 있는 골프’ 등을 출간했으며, 순수 시집으로는 ‘아리랑 산조’ ‘조용필 그대의 영혼을 훔치고 싶다’ 등이 있다. 2000년부터 서원밸리그린콘서트를 총기획·연출·진행해오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ASX, 윌슨 연예인 골프구단을 창단했다. 국내 50개 골프장의 캐디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