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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사태'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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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 기자I 2009.06.29 07:29:13
▲ 이천수


[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풍운아' 이천수가 결국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나스르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이적건은 이제 마무리되는 셈이다. 무대가 중동이긴 하지만 성사될 경우엔 또 한 명의 해외파가 탄생한다. 

그런데 여론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소속팀 관계자들은 허탈한 표정이고 팬들은 질책을 멈추지 않는다. 이천수의 사우디행은 과연 어떻게 시작돼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리고 이천수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전개될까. K리그의 핫 이슈로 떠오른 '이천수 사태'를 총정리했다.

◇ 갑작스런 이적 발표
이천수 이적에 관한 논란은 지난 23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천수의 에이전트는 서울 시내 모처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소속팀인 페예노르트가 이천수의 이적을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 또는 중동행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에이전트는 "이천수는 전남 잔류를 원한다"면서도 "계약서상 이천수를 원하는 구단이 9억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할 경우 선수의 이적 거부권이 사라지게 돼 팀을 옮길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계약서에 선수조차 거부할 수 없는 바이아웃(buy-out)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는 이야기다.

며칠 뒤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 클럽 알 나스르가 이천수를 원하고 있으며 영입을 위해 12억원 가량의 연봉을 보장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참고로 12억원은 현재 전남이 이천수에게 지급하는 연봉(2억5000만원/추정)과 비교해 5배 가까이 높은 액수다.

◇ 이적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페예노르트는 이천수를 수원에서 전남으로 재임대할 당시 계약서에 6월1일까지는 전남이 완전 이적 협상에 대한 우선권을 갖되 이후 3개월간은 페예노르트가 이적 권리를 행사한다는 내용의 옵션을 삽입했다. 유럽리그 이적시장 기간 중 이천수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전남은 완전 이적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고 우선 협상 기간을 그냥 지나쳤다. 이천수의 잇단 돌출행동과 높은 몸값에 부담을 느낀 탓이다. 참고로 전남이 지급하는 이천수의 몸값은 팀 내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원소속팀 페예노르트가 임대 계약 만료일(2010년 1월) 이전에도 언제든지 이천수를 다른 팀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전남 측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의 해외 이적설이 갓 불거질 무렵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천수가 페예노르트의 이적 지시에 대해 거부권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선수 본인이 해외진출을 간절히 원한다면 보내줄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선수가 원할 경우'에만 시즌 중 이적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됐다는 이천수 에이전트의 말과 상반된다.

상식적으로 시즌 도중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선수를 영입할 팀은 없다. 때문에 임대 협상 과정에서 이천수의 에이전트가 전남 측에 해당 조항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거나, 또는 통보했더라도 '임대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떠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취지로 구단을 설득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나 박항서 전남 감독은 이천수가 수원에서 임의탈퇴 선수로 처리돼 오갈 데가 없을 당시 구단의 반대와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옛 제자를 품어준 은인이다. 박항서 감독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28일 포항과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박 감독은 "100원을 받던 선수가 1000원을 받게 된다면 실리적으로 가는 것이 맞다"면서도 "약속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는가. 만약 연봉이 문제가 된다면 애시당초 영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천수측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 굴곡의 해외진출사
이천수의 알 나스르행이 확정된다면 이는 개인 통산 3번째 해외리그 도전으로 기록된다. 첫 무대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였다. 이천수는 2003년 7월 350만달러(당시 42억원)의 몸값을 기록하며 레알 소시에다드에 입단, 라 리가 멤버로 거듭났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4강에 오른 한국축구의 후광을 등에 업은 결과였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위성구단 누만시아로 임대됐고, 결국 2005년 친정팀 울산으로 컴백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천수는 "언어 장벽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2007년 8월 페예노르트에 진출하며 에레디비지 무대를 밟은 뒤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입단 당시에는 "페예노르트에 거액의 이적료 선물을 안기며 EPL 무대에 진출하겠다"고 당차게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기대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팀에 어울리지 못해 향수병에 시달렸고 폭행설 등 불미스런 일에도 연루됐다.

두 차례 해외무대에 나서 총 3시즌 간 경기를 소화했지만 정규리그에서 단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한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이천수는 스페인 진출 당시 레알소시에다드에서 13경기, 누만시아에서 15경기(이상 정규리그 기준)에 나섰지만 무득점에 그쳤다. 페예노르트에서도 12경기 내내 침묵했다. 만약 알 나스르에서 득점포를 가동한다면 해외 진출 이후 첫 골이 된다.

◇ 중동 진출, 그 이후는
이천수가 몸담게 될 알 나스르는 지난 시즌 사우디아라비아 정규리그에서 10승4무8패를 기록하며 4위에 오른 강호다. 리그 우승은 총 6차례 이뤄냈다. 알 힐랄(11차례), 알 이티하드(8차례) 등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한다.

실력과 전통을 겸비한 강팀에 몸을 담게 되는 만큼 주전 경쟁 또한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특유의 신바람 축구가 살아난다면 재기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원소속팀 페예노르트로 돌아간다 해도 뛸 자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로 인해 K리그로 복귀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 또한 마찬가지다. 선수의 정신 자세와 생활 태도를 중시하는 허정무 감독의 사고방식을 감안할 때 이천수가 중동 무대에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대표팀 복귀도 어려울 수 있다.  
 
성공을 위해 이천수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전제조건은 두 가지다. 우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수 자신이 뼈를 깎는 노력을 선보여야 한다. 앞선 두 차례의 해외리그 도전이 모두 실패로 끝난 건 무엇보다도 이천수가 소속팀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탓이 컸다. K리그 무대에서 이천수는 늘 중심 인물이었고 키 플레이어였지만 해외에서는 아니다. 먼저 허리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함과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언어, 문화, 팀 분위기 등 경기 외적 요인에 대해 맞춰가려는 자세도 중요하다.

두 번째로 경기 중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컨트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천수는 그간 K리그 무대에서 여러 차례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키며 '트러블메이커'로 여겨져왔다. 이와 관련한 '전과' 또한 화려하다. 2003년 수원 서포터스에게 손가락 욕을 했다가 벌금을 냈고 2006년에는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어 6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수원 소속 시절이던 지난해에는 차범근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임의탈퇴' 처리됐으며 올해 초에는 심판에게 '주먹 감자'를 날려 출전정지 처분과 함께 페어플레이 기수로 등장하는 수모도 겪었다.

이천수는 사우디에서 엄연히 '용병'이다. 사우디는 율법을 강조하는 이슬람 국가로,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다. 혹여 불미스런 행동을 되풀이한다면 K리그 시절보다 더욱 가혹한 잣대에 의해 처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꿈을 위해, 그리고 선수 자신을 위해 이제는 정말 자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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