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훈련 파트너로 7년 고생 설움·좌절 다 털어내고 세계선수권·올림픽 도전
"막 들이대는 성격이에요. 그러니까 별명이 여자 노홍철이 됐죠."
대한항공 여자탁구팀에서 중국 귀화선수인 석하정(石賀淨·24)은 이렇게 통한다. 지난 3일 KRA(한국마사회) SBS챔피언전에서 우승하며 한국 여자탁구 정상에 오른 석하정은 활달한 성격에 낯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석하정의 '코리안 드림'이 쉽게 이뤄진 건 결코 아니었다.
랴오닝성 출신 석하정이 한국에 온 것은 16세 때인 2001년. 훈련 파트너로 활용할 중국 선수를 찾던 대한항공이 한국 대표였던 안재형과 결혼한 중국 대표 출신 자오즈민을 통해 중국에서 섭외했다. 석하정의 아버지는 "인생에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는다"며 외동딸을 홀로 한국에 보냈다. '등록선수만 2000만명'이라는 중국에서 대표급으로 성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탁구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공항에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고, 외동딸 석하정은 들뜬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석하정에게 한국은 기회 이전에 '고난의 땅'이었다. 훈련 파트너는 주전 선수를 위해 자기를 철저히 희생해야 한다. 선수의 요구에 따라 백핸드 드라이브를 한 시간 치고 나면 제2, 제3의 선수가 똑같은 요구를 하곤 했다. 밤에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자기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물 재는 기계가 있으면 꽉 채웠을 거예요. 사람이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세요? 목표가 없는 거예요. 그때의 저는 강물에 떠밀려 흘러가는 배 같았어요."
석하정이 한국 국적을 얻은 것은 입국 7년째인 2007년 8월이었다. 그녀는 귀화 시험을 통과해 한국인이 됐고 중국 이름 스레이(石磊) 대신 석하정을 받았다.
그러나 좌절은 계속됐다. 대한항공 탁구단이 2008 베이징올림픽 선발전 출전 티켓을 자기와 같은 시기에 한국에 온 베테랑 당예서(28)에게 배정한 것이다. 그때 석하정은 펑펑 울며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며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 남산의 중국 대사관에 가 비자를 신청했다. 실의에 빠져 팀 훈련에도 불참하는 석하정을 달래느라 대한항공팀은 진땀을 뺐다고 한다.
"그동안 기다린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다시 라켓을 잡았다. 노력한 보람은 올 들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드디어 선발전을 통과해 한국 대표선수가 됐고 그녀는 오는 28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개인전) 출전을 준비 중이다. 특히 지난 3일 준결승에서 당예서를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했을 때 그녀는 그동안의 설움과 기쁨이 뒤섞여 눈물범벅이 됐다.
석하정을 영입한 이유성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은 "오랜 기간 낙오하지 않고 버텨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며 "석하정은 어떤 편법도 쓰지 않고 귀화 규정대로 7년간 국내 체류일수를 채워서 한국인이 된 우리나라 선수"라고 했다.
석하정은 오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인생을 걸고 도전할 생각이다. 당연히 모국인 중국 선수들과도 만나야 한다. 그럴 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석하정은 "나라는 나라고 스포츠는 스포츠"라고 했다. "한국, 중국이 아니라 땀 흘린 선수가 이기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