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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김성근 감독은 겁이 많다. 특히 야구에 대해 그렇다. ‘야구에선 겁쟁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수준이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은 늘 까맣게 타 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무너진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맡거나 새로운 시즌이 시작할때면 언제나 “큰일났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02년 LG 정식 감독에 취임했을 때도, SK를 맡은 뒤에도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당시 주위에선 “제자(조범현 현 KIA 감독)가 맡았던 팀인데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조 감독이 뭐가 되냐”고 수근거렸다.
김 감독은 진심이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그의 한 측근은 “첫 훈련이던 제주 캠프가 시작되고 며칠 뒤 감독님께서 “아직 계약서에 사인 안했는데 그만두면 안될까”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SK 전력에 그만큼 구멍이 많다며 괴로워하셨다”고 털어놓았다.
SK는 그동안 그가 맡았던 팀 중에선 가장 좋은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태평양,쌍방울,LG 등은 그야말로 전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맡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여전히 “두렵다”는 말로 출발선을 나섰다.
김 감독은 그러나 두려움을 외면하거나 잊으려 하지 않는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그 간극을 줄여나간다. ‘두려움’에 대한 그의 반응은 외부에 알리기 위함이라기 보단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둬야만 팀이 위기를 맞았을때 구렁텅이까지는 빠트리지 않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전문가들은 저마다 예상평을 내 놓는다. 나름 야구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들의 지적이지만 정작 현장에선 그리 호평을 받지 못한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얼마 전 “전문가란 사람들이 어찌 그리 못 맞히는지 모르겠다”고 농반 진반의 타박을 한 바 있다.
대부분 팀의 긍정적 요소를 평가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즌은 정작 희망대로만 풀리지 않는다. 예상 외의 부상이 나오고 믿었던 선수들의 슬럼프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장의 감독까지 이같은 ‘겉핥기 식 희망사항’으로 시즌 구상을 했다간 실패 확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김 감독은 바로 언제나 가장 부정적인 전망에 초점을 맞추고 시즌을 준비한다. 부상이 있는 선수들은 전력에서 일단 제외해 둔다. 선수들의 페이스에도 매우 짜게 점수를 매겨놓는다. 지난해 3할을 친 선수라 할지라도 최근 흐름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해 반짝 할 수준의 선수는 아닌지 면밀히 따져본다.
때문에 차선이 아니라 차차선까지 준비해 둔다. 불안한 마음을 술이나 취미 생활로 잊으려 하지 않는 대신 철저한 준비로 그 요소를 하나씩 줄여가는 것이다.
2006년 11월 제주도 가을 훈련이 시작될 즈음 김 감독의 SK에 대한 전력구상을 살짝 들여다보자. 우선 채병룡과 신승현은 일찌감치 전력 외로 쳤다. 둘 모두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다른 선수들만으로 판을 짰다.
타선도 그렇다. 박재홍 김재현 등의 페이스가 분명 전성기와는 다르다는 기준을 갖고 들어갔다. 이때만해도 이호준의 합류는 장담할 수 없었다. 김 감독의 계산법 대로라면 기존의 원,투 펀치와 중심타선이 모두 허물어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당연히 “큰일 났다”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채병룡과 신승현을 대신할 선수를 키워내거나 영입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외국인 선수를 투수 두명으로 가져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재홍 김재현 등의 빈자리는 젊은 선수들의 육성에 승부수를 뒀다. 조동화 김강민 박재상,여기에 최정이 그 후보로 떠올랐다. 이후 강력한 담금질로 이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데 박차를 가했다. 1루수 요원인 박정권 김재구까지 외야 훈련을 시키며 대비했다.
시즌이 모두 끝난 현재 시점에서 따져보면 김 감독의 ‘슬픈 예감’ 중 틀린 것은 채병룡 하나 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채병룡의 가세가 SK에 가져다 준 효과다.
만약 김 감독이 채병룡을 전력으로 생각해뒀다면 부족했던 퍼즐 하나를 끼워넣는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없다고 생각한 선수가 가세하게되니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조범현 신임 KIA 감독은 SK의 2007 시즌 성공에 대해 가장 냉정한 분석이 가능한 인물이다. 바로 직전까지 SK를 이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2007시즌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2006시즌이 시작되기 전 투수 이승호와 엄정욱의 몸상태에 대해 여려차례에 걸쳐 확인 작업을 했다. 트레이닝 파트에선 ‘무조건 된다’고 했고 결국 마지막에 가선 나도 믿었다. 결국 그 부분에서 펑크가 나며 어려운 시즌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김성근 감독님만큼의 대비는 하지 못했던 셈이다. 나를 비롯해 젊은 감독들과 확실히 차이가 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의 자신의 불안감이 선수단에 전염되는 것은 철저하게 막는다. LG 감독이던 2002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그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주위에선 우리를 꼴찌 후보라 말한다. 그러나 그건 진짜 우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땀은 반드시 대가를 가져온다. 안되면 내 힘으로라도 4강까지 이끌테니 각자의 능력만 최대한 발휘하면 된다.” 2007시즌 전 SK 선수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선수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자신이 해내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데이터와 씨름을 한다.
김 감독은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지은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는 질문에 “한화와 개막전”이라고 답했다. 당시 김 감독은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쳐 다 잡았던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바 있다.
김 감독은 얼마 전 당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바 롯데 첫해엔 감독 시절의 집중력이 이어졌다. 이승엽에게 투수의 버릇 등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경기 매 순간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듬해엔 넓은 관점에서만 경기를 지켜봤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감이 확실히 떨어져 있더라. 이겨내려고 많은 애를 썼고 5월이 다 지나고서야 예전의 감이 돌아왔다. 개막전서 우리가 이겼다면 일찌감치 바람을 타며 여유있는 시즌을 보냈을텐데... 선수들이 나 때문에 안해도 될 고생을 한 셈이다.”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 후 가진 언론 인터뷰서도 “겁이나는 것은 감독도 경기중 집중력이 끊어지는 것이다. 경기 중 단 한순간이라도 놓칠까 두렵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두려움은 단순히 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그를 믿고 따르는 선수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를 향해 휘두르는 채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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