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 "'하얼빈' 순수 오락영화였지만…그렇게 못 찍겠더라"[인터뷰]①

김보영 기자I 2024.12.25 08:00:00

"독립군들의 희생 묵직히 담고 싶었다…누 되지 않길"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우민호 감독이 역사극과 실존 위인 안중근을 조명하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영화 ‘하얼빈’의 연출을 맡게 된 과정과 작품에 임한 진정성을 털어놨다.

우민호 감독. (사진=CJ ENM)
우민호 감독은 영화 ‘하얼빈’의 개봉을 앞뒀던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현빈 분)가 독립 투쟁 동지들과 함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노리는 약 일주일의 과정과 고뇌를 그린다.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이 전작 ‘남산의 부장들’ 이후 약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우 감독은 ‘내부자들’부터 ‘남산의 부장들’까지 주로 악인들의 일그러진 욕망과 선택을 통해 현실의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경종을 울리는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앞서 우민호 감독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 실화를 소재로 한 ‘남산의 부장들’로 시대극을 경험했다. 이후 시대극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우민호 감독은 ‘하얼빈’으로 시대극에 한 번 더 도전했다. 악인들의 역사가 아닌, 위인들의 역사다.

역사 속 실존 영웅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의 경우, 드라마와 영화를 불문 감독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으로 여겨진다. 더욱 까다로운 고증을 향한 잣대,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란 인식 등 부담이 적지 않아서다. 우 감독은 그럼에도 ‘하얼빈’을 연출하게 된 계기를 묻자 수년 전 우연한 계기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을 접하게 된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자서전을 우연히 읽게 됐는데 몰랐던 지점들이 꽤 있었다. 의거 당시 그의 나이가 30대로 너무나 젊어서 처음 놀랐고, 그간 이분을 영웅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 동료들의 지탄도 많이 받은 패장(敗將)이었더라. 그럼에도 이분이 어떻게 그런 거사를 성공할 수 있었을까 호기심을 많이 느꼈고 그분이 실제 남기신 말씀들도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굉장히 와닿았다”라고 떠올렸다.

우 감독은 “내가 그분처럼 나라를 구해야 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도 아닌데 와닿았던 대목이 있다. 영화를 보시면 마지막 신 중반부의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어록이다.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포기하지 않고 가야 한다. 멈춰서는 아니된다’ 이 말을 안중근 장군님께서 실제 하셨다. 그 말이 내게 와닿더라”며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고 역경을 많이 겪지 않나.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멀리 느껴지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어지더라. 지금 이 순간 우리들에게 안중근 장군의 말씀이 어떤 울림과 힘,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이걸 잘 표현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연출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로부터 대본을 받았을 때와 지금 완성된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고도 털어놨다. 우민호 감독은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님이 ‘하얼빈’의 초고를 갖고 계셨다. 처음 이 영화를 제안 주셨을 땐 못한다며 거절을 했었다. 워낙 영웅이신데다 내가 연출한 전작엔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잖나. 그런 면에서 잘 연출할 용기가 없었다”면서도, “연출을 결심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혹시 감독 정해졌냐 물어보니 안 정해졌다고 하더라. 대본을 좀 읽어볼 수 있겠냐 부탁해 읽어봤을 땐 깜짝 놀랐다. 처음 대본은 순수 오락영화 장르였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가공의 인물이나 가상의 사건들을 갖고 오락영화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대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 안중근 장군과는 좀 다른 결의 오락영화였다. 도전하고는 싶었지만 이렇게는 진행하지 못하겠다 싶더라. 자신은 이 영화를 묵직하게 그리고 싶었고 그 생각에 동의를 한다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동의가 이뤄져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연출 과정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사진=CJ ENM)
‘하얼빈’은 제작비 300억 규모에 손익분기점은 약 650만명 정도로 알려졌다. 국내 영화에서 드문 블록버스터 대작을 연출하는 입장에서 재미를 내려놓고 숭고함과 묵직함을 강조하는 결정이 물론 쉽진 않았다. 우 감독은 “당연히 그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그걸 딛고 과감히 선택한 것”이라며 “블록버스터의 기존 성공 공식을 지킨다 해서 꼭 영화가 흥행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찍으면 안된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정말 진심을 다해 찍는다면 관객들도 충분히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신아산 전투 신도 많은 액션을 덜어내 탄생한 결과물이라고. 신아산 전투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대한의군들이 수적 열세 속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둬낸 전투다. 하지만 그만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당 전투로 목숨을 잃었다. 우 감독은 “처음 전투신도 쾌감을 주는 액션의 느낌으로 무술감독이 짜왓지만, 내가 모든 걸 바꿨다. 광주에서 그 장면을 찍었는데 유례없던 폭설이 내렸다. ‘하얼빈’ 그 신에서 나온 눈들은 가짜눈이 아닌 전부 실제 눈이었다. 당시 산에서 50~60cm 수준의 눈이 내렸는데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천운이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하얼빈’ 개봉에 임하는 남다른 의미도 털어놨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며 스태프들과 이런 이야길 했다. ‘이 영화는 잘 찍어도 못 찍어도 TV에서 삼일절, 광복절마다 계속 틀어줄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 정말 잘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라며 “못 찍는 건 감독으로서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작품만큼은 정말 잘 만든 영화로 남겨지길 바랐다”고 고백했다.

이어 “안중근 장군님이 이 영하를 보시진 못하겠지만, 그분의 얼굴에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독립군들에게 누가 되질 않길 바라며 이 시대를 하는 우리 대중에는 힘과 위로가 되는 영화가 되길 빈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한편 ‘하얼빈’은 지난 24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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