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내달 2일 개막
박찬욱 제작 사극영화 '전,란'
OTT 최초 개막작 파격 선정
방탄소년단 RM 다큐 초청도
"시대상 반영, 대중 진입장벽 낮춰"
"독립영화 소개 기능 퇴색" 우려도
| (왼쪽부터)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에 선정된 넷플릭스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 포스터, BIFF 오픈시네마 부문에 공식초청된 방탄소년단(BTS) RM의 다큐멘터리 영화 ‘RM: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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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영화제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입장에서 확실한 건 올해 화제성이 최근 수년 통틀어 가장 뜨겁다는 거다. 기대든 쓴소리든 이렇게 많은 설왕설래가 오간 적이 없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 되지 않을까.”
영화 제작자 A씨가 개막을 앞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향한 업계의 반응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인 BIFF가 내달 2일 스물아홉 번째 항해를 시작한다. 직장 내 성희롱, 인사 잡음으로 시끌시끌했던 지난해 BIFF는 이사장도, 집행위원장도 없이 축제가 열리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광수 이사장을 선임했지만, 집행위원장은 여전히 공백인 채 박도신·강승아 두 명의 부집행위원장이 영화제 안팎의 운영을 책임진다. 특히 올해는 열악한 환경 속 파격적인 쇄신과 도전을 감행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K팝 등 최근 콘텐츠 업계를 움직인 트렌드와 변화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내홍 이후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 실추된 명예, 멀어진 대중의 관심을 회복해 관객 친화적 행사로 거듭나겠단 의지다.
| 넷플릭스 영화 ‘전,란’ 배우 강동원 캐릭터 스틸. (사진=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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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영화 ‘전,란’ 배우 강동원 캐릭터스틸. (사진=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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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마담 된 OTT 영화…용기vs씁쓸 갑론을박
제29회 BIFF는 내달 2일부터 11일까지 열흘간 부산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 7개 극장, 28개 스크린에서 63개국 영화 224편을 상영한다. 지난해보다 15편 늘어난 규모로, 관객 참여형 행사인 ‘커뮤니티 비프’ 상영작을 합해 총 279편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영화제를 향한 관심 및 화제성을 환기하고자 초청작들의 ‘풍성함’에 노력을 기울였다. 국고보조금이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이나 삭감돼 예산이 줄었음에도, 기업 협찬 등 자체 재원 조달의 파이를 키워 초청작 수를 늘린 이유다.
변신은 포문을 여는 개막작에서부터 관측됐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해 강동원, 박정민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사극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이 올해 개막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폐막작은 ‘영혼의 여행’(감독 에릭 쿠)이다. 지난 2021년 ‘온 스크린’ 부문을 신설하는 등 OTT 작품의 초청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영화제의 얼굴로 불리는 개막작에 OTT 영화를 상영하는 건 올해가 최초다. 국내외 다른 국제영화제들과 비교해도 드문 일이란 반응이다.
반응은 극명히 엇갈린다. 5년째 영화제를 찾는 회사원 양주희(가명·32) 씨는 “OTT 영화임에도 개막작이 된 건 그만큼 작품 완성도가 뛰어나단 의미이지 않을까”라며 “언젠가 누구라도 총대를 메야 했을 도전이다. 그 시도를 처음 이끈 건 용기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영화감독 B씨는 “‘전,란’은 제작 초기부터 대본의 완성도가 높단 소문이 업계에 자자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고 내로라할 배우들이 총출동했으니 국내는 물론 해외 평단, 관객들의 주목도도 높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개막작은 영화제의 간판이고, 한국 극장 영화들이 요즘 힘든 시기에 굳이 OTT 작품을 앞세워야 했나”라고 비판했다.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은 “역대 개막작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며 “넷플릭스란 플랫폼 때문에 고민한 대목은 없다. 관객이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 감안해 선정했고, 넷플릭스라 부담 갖는 건 예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 방탄소년단 RM 다큐멘터리 영화 ‘RM: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 스틸. (사진=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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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룹 에픽하이 공연실황 영화 ‘에픽하이 20 더 무비’ 포스터. (사진=CG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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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트와이스 다현 스틸. (사진=(주)영화사테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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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펫 수놓는 K팝스타…RM 다큐 눈길
K팝으로 화제성을 견인한 전략도 눈에 띈다.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하는 ‘오픈 시네마’ 부문에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다큐멘터리 ‘알엠(RM):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를 초청한 게 대표적이다. K팝 다큐멘터리가 이 부문 공식 초청작에 이름을 올린 건 처음이다.
강소원 프로그래머는 “한국 다큐멘터리 진영이 만드는 영화와 결은 다르지만 대중적으로 관객에게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아 선정했다”며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팬들과 일반관객까지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공연실황을 담은 ‘에픽하이 20 더 무비’는 ‘커뮤니티 비프’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트와이스 다현의 첫 스크린 데뷔작에 그룹 BIA4 출신 진영이 주연한 리메이크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월드 프리미어 초청작에 선정됐다. 군 복무 중인 RM을 제외한 이들 모두 영화제에 참석해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부터 관객과의 대화(GV) 등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시장에서 주목받기 힘든 작가주의, 독립·예술영화들을 소개하고 알리는 창구로서 영화제의 기존 기능이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면서도 “관객의 무관심, 예산 삭감으로 매년 수많은 영화제가 생겼다 사라지는 만큼, 명맥을 잇는 게 영화제의 핵심 과제다.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평했다. 이어 “영화계의 시대 변화와 트렌드를 적극 반영해 대중의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BIFF의 쇄신 노력이 돋보인다”며 “최근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들도 대중화의 흐름을 수용하는 분위기고 BIFF가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 입지가 있는 만큼 향후 다른 영화제들이 더욱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