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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24에서도 VAR(Video Assistant Referee·비디오 보조 심판)은 맹활약 중이다. 오히려 그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지난 18일(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프랑크푸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 2024 E조 조별 예선 벨기에와 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VAR은 벨기에의 간판 로멜로 루카쿠가 만든 골을 두 차례나 취소했다. 결과는 0-1로 벨기에의 패배였다.
인간 심판이라면 쉽게 잡아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벨기에는 슬로바키아에 먼저 골을 내준 뒤 승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슬로바키아 골문을 두드렸다. 후반 11분 우측 코너킥 상황에서 아마두 오나나가 골 지역 왼쪽에서 헤더로 떨어트린 볼을 루카쿠가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밀어 넣어 승부의 균형을 맞추는 듯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루카쿠의 오프사이드가 선언돼 주심은 골을 취소했다. 루카쿠의 어깨가 선상보다 앞서 있었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더욱 아쉬운 골 취소는 후반 41분에 나온 것이었다. 루이스 오펜다가 페널티지역 왼쪽 사각에서 크로스한 볼을 루카쿠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왼발 슈팅으로 연결, 골 그물을 흔들었다.
그러나 득점 직후 골 상황 체크에 들어갔고, 주심은 온 필드 리뷰를 통해 오펜다가 볼 경합 과정에서 핸드볼 반칙을 범한 것을 발견해 골을 취소했다. 아디다스가 제작한 유로 2024 공식 경기용 공의 중앙에는 공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칩이 장착돼 있었고, 시스템은 오펜다의 손이 실제로 공과 접촉한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부터 새로 도입된 기술이었다.
VAR의 신기술이 아니었다면, 벨기에가 역전 또는 동점으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세계 랭킹 3위팀의 패배는 대회 최대 이변으로 평가된다. VAR의 정확한 판정이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VAR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도 있다. 특히 오펜다의 핸드볼 판정을 잡아낸 것에 대해서는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전문가,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반대로 이런 반응은 언더독에게 패한 강팀(벨기에)에 우호적인 인간의 편향적 시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렇듯 VAR을 비롯, 로봇 심판은 여러 종목에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미 테니스에서는 호크아이(Hawkeye)가 판정의 정확성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부터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투구판정시스템)를 도입했다. 세계 최초이다. ABS는 야구 경기장에 설치된 3대의 카메라를 통해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추적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자동으로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타자의 체형과 홈플레이트를 근거로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만들고 투구가 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국 프로야구는 끝면과 중간면 두 번 통과)하면 존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한다.
현재까지는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지도자와 선수들 사이에서는 불만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도입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인간보다는 덜 편향적이라는 점에서 로봇심판이 내리는 판정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굳어지는 모양새이다.
인간의 편향은 오래된 습성이다, 프라기야 아가왈이 쓴 ‘편견의 이유’에 보면 인간의 편향성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인간의 뇌 구조가 편향성을 키울 수밖에 없게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제 ‘로봇 심판은 정확하고 공정하다, 인간 심판은 정확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가 만들어진 것 같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간 심판이 퇴출되지 않을까’라는 예상,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물론, 로봇 심판이 편향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다. 로봇 심판의 핵심인 AI(인공지능)도 인간이 설계하고, 학습을 시키는 것이기에 편향적일 수 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또, 기술적 결함이 없어야 한다. ABS가 두 차례나 작동하지 않은 사례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로봇 심판만 믿고 있다가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혼란은 결국 인간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로봇 심판이 인간 심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분담하는 방향이 이상적이다. 전체적인 경기 진행을 로봇에 맡기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로봇 심판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해서 인간 심판이 필요 없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로봇과 인간 심판이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