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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사태였다. 전력강화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첫 회의(21일) 시작 전부터 김이 빠졌다. 협회 내부에서 국내파 감독이 정식 지휘봉을 잡게 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차기 사령탑에 대한 로드맵이 먼저 나온 것이다. 설마 했던 ‘끼워 맞추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인사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위원회도 1차 회의에서 국내 감독을 정식 임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장 다음 달 21일과 26일 태국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이 잡혀 있어 감독 자리를 비워 둘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명단을 선별하고 발표하는 시기까지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축구 팬들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싸고 점점 강하게 협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협회의 일 처리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협회의 계획대로라면 감독 후보군을 추리고 각 지도자의 축구 철학과 적합성을 검토한 뒤 최종 면접까지 한 달 안에 끝내야 했다. 다음 월드컵 본선까지 약 2년 4개월밖에 남지 않았기에 축구 팬들은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리그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부족했다. 위원회는 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현직 K리그 사령탑도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개막을 코앞에 두고 사령탑을 뺏길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구단과 팬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점점 비판이 거세지자 위원회는 노선을 틀었다. 제대로 된 인물을 선임하려면 3월 A매치까지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똑같은 위원회에서 사흘 만에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은 셈이다.
한국 축구는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 축구의 위상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협회 일 처리 방식은 아직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의 굴욕을 팬들과의 눈치 싸움이 아니라 협회의 성찰과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