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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심판’이라고 하지만, 로봇이 등장해 판정을 내리는 건 아니다.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로 투수가 던진 공의 위치·속도·각도를 측정한 뒤 볼 또는 스트라이크를 판정해 구심에게 전달한다. 정확한 명칭은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이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은 주관적이다. 야구규칙에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지만, 구심의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스트라이크 존이 다른 건 상식이 돼버렸다. 외국인 투수가 볼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고, 외국인 타자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헬멧을 집어 던지는 등의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죽을 쓰고 나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스트라이크 존 적응’이었다. 비디오 판독 중인 ‘세이프-아웃’ 판정처럼 ‘오심’을 직관적으로 가려내기도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야구계 전반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모든 경기에서 볼과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이 제기된 건 아니지만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선 심판들의 공정성에 불신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심판들의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들쭉날쭉한 스트라이크 존 또한 논란의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감독이나 선수들이 퇴장을 당하는 사례 중 대다수가 스트라이크, 볼 판정 때문이었다. 이제는 볼-스트라이크 판정에도 ‘공정성’과 ‘신뢰성’이 확보되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로봇심판, ABS가 전지전능할 것이라는 맹신은 위험하다. ABS가 완벽한 기술인지에 대해서는 따져 봐야 할 부분이다. 이미 고교야구에서는 올해 ABS가 전면 도입돼,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고 있는데, ‘판정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논란이다.
지난 4월 1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제2회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타자 앞 홈플레이트 앞에서 땅바닥까지 떨어진 포물선 형태의 투수 변화구가 스트라이크로 판정이 되는 일이 있었다. 5월에 목동구장에서 열린 ‘황금사자기대회’에서는 볼넷이 늘어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스트라이크존에 걸친 듯한 공을 모두 볼로 판정됐기 때문이다. 사사구가 속출하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로봇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을 재설정했다.
KBO는 2020시즌부터 퓨처스리그(2군)에서 시범 운영을 해왔기에 2024시즌부터는 1군에 도입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KBO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판정까지 걸리는 시간인 것 같다. 2군 도입 초기에는 볼-스트라이크 판정까지 시간이 걸려서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를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줄였다. 스피드업을 강조하는 KBO로서는 이제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1군 도입을 결정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판정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장 반응은 스트라이크 존의 높낮이에 대한 아쉬움 등이 많았다. 위에 언급한 고교 야구 사례처럼 선수, 심판, 관중이 납득할 수 없는 공에 스트라이크 콜리 울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2군이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기에 공론화가 안됐을 뿐이지, 당장 1군에 적용하게 되면, 현재의 판정 논란에 버금가는 논란이 벌어지리라는 우려가 생긴다.
허구연 KBO 총재는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통과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도입부터 결정한 것이다. 물론, 비디오 판독 도입 초기처럼 도입 후 완성도를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자칫 1군 리그가 ‘로봇심판 혹은 ABS를 위한 실험무대’가 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로봇심판 등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에 대한 ‘무오류의 신화’가 ‘허상’이라는 지적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AI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기술이 합리적이고, 비편파적인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희망은 ‘허상’보다는 ‘망상’에 가깝다.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편향들이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등에 이식, 흡수되는 현실이다.
예를 들면, 검색 엔진에 ‘변호사’나 ‘회계사’ 등 전문 직종을 검색했을 때 뜨는 이미지가 주로 ‘백인 남성’이었던 것이 있을 수 있다.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스포츠 판정에서도 이런 현실 세계의 편향들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ABS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일반 기업이라는 점도 또 다른 공정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KBO 등 경기 단체가 통제하겠지만, 전문 기술에 대해 제대로 된 통제가 가능할 것이냐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애초 ABS 도입을 고려했던 메이저리그도 도입을 보류한 이유가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 A에서 도입하긴 했지만, 절반 정도는 로봇이, 나머지 절반은 기존 방식인 인간 구심이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등 완전 도입은 아니었던 것도 컴퓨터로 설정하는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물론, AI 또는 로봇 심판은 시대의 흐름이긴 하다. 지난해 열린 2022 FIFA 카타르월드컵에서 도입된 반자동 오프사이드는 호평을 받았다. 문제는 인간 심판과의 조화이다. 반자동 오프사이드는 인간이 내리는 판정의 보조적인 역할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인간의 오류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로봇심판은 효과적이다. 그러나 기술이 완벽한 판정을 내린다는 인식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로봇심판이 전지전능하거나, 오류가 없다는 맹신 말이다.
판정의 공정성과 신뢰는 오류를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발생한다. ABS 등 로봇심판 도입도 이런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