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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6세, 지천명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몸을 잘 쓰는 액션 배우’란 설경구의 수식어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 ‘야차’로 녹슬지 않은 총기 액션을 보여줬던 설경구는 오는 18일 개봉을 앞둔 스파이 액션 영화 ‘유령’부터 공개를 앞둔 또 다른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등 올해도 어김없이 다양한 액션물로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의 개봉을 일주일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설경구를 만났다. 설경구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유령’ 개봉을 앞둔 소감과 함께 스파이 액션 연기,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등 후배 배우들과의 촬영 소회를 털어놨다.
‘유령’은 개봉 전부터 ‘독전’ 이해영 감독과 설경구의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다. 설경구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소속이지만,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을 받아 호텔 안엔 갇힌 무라야마 쥰지 역을 맡았다. 쥰지는 무라야마 가문의 7대손으로 아버지가 일본의 위대한 장군이지만, 어머니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총독부 내에서 각종 견제와 차별을 받아왔다. 조선의 언어와 사정에 능통해 성공 가도를 달린 엘리트 군인이었지만 결국 좌천돼 통신과 감독관으로 파견된 인물. 이에 용의자로 의심을 받지만, ‘유령’을 자기 손으로 잡아 복권하기 위해 거침없이 행동에 나선다.
설경구는 또 다른 ‘유령’ 용의자 박차경 역을 맡은 이하늬와 맨몸, 총기 등을 활용한 굵직한 액션 대결을 펼친다. ‘유령’의 액션을 한 마디로 설명해달란 질문에 그는 ‘살아남기 위한 액션’이라 답했다. 그는 “모든 인물들이 죽기 살기의 액션을 펼쳐 몸싸움이 격했고, 현장도 그만큼 치열했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감독과 관객들이 끊임없이 찾는 설경구 액션의 매력은 무엇일까. 정작 설경구는 “팔다리가 길지 않아 액션 폼이 시원시원하지 않다”고 겸손을 드러냈다. 다만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치열함, 강한 힘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평했다. 그는 “개싸움이 편하다. 살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며 엎치락뒤치락 발버둥을 치는 ‘개싸움’이 인간적으로도 느껴진다”고 전했다.
설경구는 역할을 위해 무리한 체중 조절도 불사하는 열정으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단 한 장면 나오는 청년 시절 쥰지를 표현하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고 한다. 그는 “언제든 작품에 임할 수 있게 지금도 운동은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다. 오늘 인터뷰 전에도 줄넘기를 하고 왔다”고 노력을 밝혔다.
매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은 ‘연민’이라고. 설경구는 “쥰지는 악당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저로선 그가 시대를 버티기 위해 악을 쓰는 캐릭터라 생각했고 그래서 불쌍했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태생에 있는 ‘조선’을 누구보다 지워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더욱 조선인을 증오하는 모습, 아버지처럼 일본인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차별받는 그의 모순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이하늬, 박소담, 이솜, 이주영 등 여배우들의 연기를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설경구는 “저와 이하늬 씨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싸움은 캐릭터 대 캐릭터의 싸움이지 남녀 대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하늬에 대해선 “제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편이라 이하늬 씨가 다칠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제가 이하늬 씨에게 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정말 연습 많이 했더라, 온 몸으로 액션에 임한 것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