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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토트넘)이 호쾌한 해트트릭으로 그동안의 골 가뭄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국가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마음 속을 가득 메운 부담감도 한층 덜어냈다.
손흥민은 1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스터시티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라운드 홈 경기에 3-2로 앞선 후반 14분 교체 투입된 뒤 연속 3골을 터뜨려 토트넘의 6-2 대승을 이끌었다.
지난 시즌 23골을 터뜨려 아시아 선수 최초 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은 이번 시즌 개막 후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었다. EPL 7경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1경기 등 8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좀처럼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은 경기 전 “더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며 손흥민의 벤치행을 예고했다. 붙박이 주전이었던 손흥민 입장에선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 됐다. 그라운드를 밟은 시간은 30분 정도였지만 활약은 100점 만점이었다.
손흥민은 들어가자마자 본격적으로 ‘골 잔치’를 벌였다. 후반 28분 상대 수비수 2명을 앞에 둔 상황에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시즌 마수걸이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은 골 직후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몇 걸음 옮긴 뒤 그라운드 위에 멈춰 섰다. 케인을 비롯한 동료들이 일제히 손흥민에게 다가와 끌어안았다.
한 번 불붙은 손흥민의 득점포는 꺼질 줄 몰랐다. 후반 39분에는 케인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아크 오른쪽에서 전매특허와도 같은 왼발 감아차기로 두 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는 ‘쉿 세리머니’를 펼쳤다.
후반 41분에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마무리,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골키퍼가 손흥민의 슈팅에 손을 댔지만 공은 굴절돼 골문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선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지만, 비디오판독(VAR)을 거쳐 득점으로 인정됐다. 손흥민은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해트트릭’을 자축했다. 그제서야 손흥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아왔다.
이날 손흥민이 시즌 첫 골을 터뜨린 뒤 해트트릭을 완성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13분 21초’였다. 손흥민의 해트트릭은 지난 4월 아스톤빌라와 경기 이후 5개월 만이자 EPL 통산 세 번째였다. 앞서 2020년 9월 사우샘프턴과 경기에서 4골을 넣은 게 처음이었다.
손흥민은 토트넘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진기록도 세웠다. 교체 출전한 뒤 해트트릭을 달성한 최초의 토트넘 선수가 됐다. 축구 기록 전문 매체 ‘옵타’에 따르면 ‘교체 해트트릭’은 EPL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도 단 7번밖에 나오지 않은 희귀한 기록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 9월 에버턴 소속이던 스티븐 네이스미스가 첼시를 상대로 달성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현지 중계진과 인터뷰에서 “솔직히 골이 들어갔을 때 믿기지 않았고 당혹감, 실망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면서 “그냥 멍하니 서서 관중석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었다”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아울러 “팀이 잘해도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웠는데 오늘 좋은 승리를 거두면서 실망감도 사라졌다”고 말한 뒤 활짝 웃었다.
평소 과묵하기로 유명한 콘테 감독도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음 경기에선 손흥민을 벤치에 두는 실험을 반복할 수 있다”고 특유의 썰렁한 농담으로 기쁨을 나타냈다.
그동안 손흥민에게 비판적이었던 현지언론도 이날은 극찬 일색이었다. 손흥민은 경기 후 EPL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 된 팬투표에서 무려 75.8% 지지를 받아 MOM에 선정됐다. 모든 매체가 손흥민에게 최고 평점을 쏟아냈다. 심지어 영국 축구 매체 ‘풋볼 런던’은 손흥민에게 최고 평점인 10점 만점을 줬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미드필더 출신으로 2014년 토트넘 감독을 지낸 팀 셔우드(53)는 EPL 홈페이지에 소개된 영상을 통해 “손흥민은 세상 모든 감독들의 꿈”이라며 “개인기나 골 결정력, 인성까지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손흥민은 경기가 끝난 뒤 자신의 SNS에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해트트릭.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시는 데 감사드린다, 항상’(when life gives you lemons…. score a hat-trick. love you all and thank you for the support, always)이라고 남겼다.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한 것이다. 인생이 시큼한 레몬같은 시련을 주더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겨내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들라는 의미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화려하게 부활한 손흥민을 그대로 나타낸 표현이었다.
부담감을 덜어낸 손흥민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대표팀 합류를 위해 귀국길에 올랐다. 19일 파주 국가대표훈련센터(NFC)에 소집돼 23일 코스타리카와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