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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의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이폰은 최초의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터치스크린 작동 방식을 도입, 사용자의 편의를 높인 스마트폰으로 ‘손 안의 컴퓨터’로 불리며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최근 가요계에도 기존 데뷔 방식을 거부하고 음악과 아티스트라는 본질에 충실한 프로모션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걸그룹이 있다. 지난달 데뷔와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기성 그룹들을 위협한 뉴진스가 그 주인공이다. 뉴진스는 데뷔곡 ‘어텐션’으로 국내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서 일간차트와 월간차트 1위에 올랐다. 신인 걸그룹이 데뷔곡으로 멜론 일간차트 1위에 오른 것은 투애니원, 미쓰에이, 블랙핑크에 이어 네 번째, 월간차트 1위는 투애니원, 블랙핑크에 이은 세 번째다. 뉴진스는 또 데뷔곡으로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주간차트(위클리 톱 송 USA) 200위, 일간차트(데일리 톱 송 USA) 183위로 진입하는 성과도 냈다.
뉴진스는 출발부터 파격적이었다. 이들이 가장 처음 한 일은 첫번째 타이틀곡 ‘어덴션’의 뮤직비디오 완성본을 공개한 것이었다.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으레 거치는 티저 이미지나 트레일러 공개 등의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4곡 전곡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음악과 아티스트의 매력으로 승부했다.
이들의 음악도 판타지적인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으로 브랜딩하는 요즘의 K팝과 달랐다. 평균 나이 16세의 걸그룹으로, 10대 소녀들이 일상에서 할 법한 생각과 고민, 감정들을 음악으로 솔직하게 풀어내 친근하게 다가갔다. 청초한 화장과 스트릿 패션으로 풋풋함과 자연스러운 멋을 살린 콘셉트가 10대 감성을 담은 음악과 어우러져 걸크러시 또는 섹시로 편향된 걸그룹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뉴진스의 성공적 데뷔에는 소속사 어도어의 수장 민희진 대표가 있다. 민 대표는 뉴진스 멤버 선발부터 데뷔까지 제작 전반을 진두지휘, 총괄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민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다. 그는 2007년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샤이니·에프엑스·엑소·레드벨벳 등의 앨범 콘셉트 기획과 비주얼 디렉팅을 담당하며 이름을 알렸다. 소녀시대와 엑소를 국민 아이돌로 등극시킨 ‘지’(Gee)와 ‘으르렁’의 콘셉트와 비주얼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일찌감치 ‘K팝 브랜딩 혁신가’로 이름을 떨치며 올해 초 미국 유명 매체 버라이어티 선정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에 영향을 미친 여성’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SM의 후광 효과도 없지 않았을 터. 민 대표는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선보인 첫 작품 뉴진스를 통해 공산품을 찍어내듯 비슷한 콘셉트의 아이돌을 양산해내는 업계에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해냈다.
민 대표는 남성 아티스트 또는 매니저 출신의 제작자가 중심인 K팝 신에서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 제작자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듣는 즐거움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의 중요성을 이해하며 음악이 더 빛나도록 ‘표현’했다. 추종자가 아닌 리더이기에 발현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민 대표는 지난해 12월 출연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디자인만 잘해야지’가 아니라 ‘이 친구들이 어떤 그룹으로 보이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한 번에 작업이 끝날 수가 없다”며 아티스트의 장기적인 내러티브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민 대표가 이제 첫발을 뗀 뉴진스와 함께 어떤 스토리로 K팝의 미래를 만들어나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