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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패트릭은 벙커에서 9번 아이언으로 깨끗하게 공을 떠냈고 핀 뒤쪽 5.5m 거리에 올려놨다. 두 번의 퍼트로 파를 지키고 먼저 경기를 마무리한 그는 잴러토리스의 4.2m 버디 퍼트가 홀 왼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는 걸 지켜봤다. 잴러토리스는 머리를 감싸쥐며 주저앉았고, 피츠패트릭의 캐디 빌리 포스터는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터뜨렸다. 피츠패트릭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피츠패트릭이 20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의 더 컨트리클럽(파70)에서 열린 제122회 US 오픈(총상금 1750만 달러)에서 최종 합계 6언더파 274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US 오픈 역대 최다 우승 상금인 315만 달러(약 40억6000만원) ‘잭팟’을 맞은 피츠패트릭은 남자 골프 사상 최대 권위를 갖춘 US 오픈 챔피언이라는 ‘영예’도 함께 안았다.
이번 US 오픈은 개막 전부터 진통을 겪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대항하는 성격을 띤 리브(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가 지난 9일 개막했고, 이에 리브 골프 쪽으로 이탈한 필 미켈슨(미국), 더스틴 존슨(미국),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케빈 나(미국) 등은 PGA 투어 회원 자격을 포기하거나 PGA 투어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US 오픈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이들의 US 오픈 출전을 허용했다. 리브 골프가 출범하기 전 US 오픈 출전 자격을 충족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US 오픈은 4대 메이저 가운데 가장 많은 상금을 지급하는 대회다. 올해 마스터스와 PGA 챔피언십이 총상금을 1250만 달러로 끌어올린 데 이어 지난해 총상금이 1250만 달러였던 US 오픈은 총상금을 1750만 달러(약 225억원)로 대폭 늘렸다. 각 대회당 총상금을 2500만 달러(약 322억원)로 내건 리브 골프를 의식한 처사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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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피츠패트릭은 9년 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곳과 같은 골프장인 더 컨트리클럽에서 US 오픈 골프대회 타이틀을 따내는 감격을 누렸다. US 아마추어 챔피언십과 US 오픈을 모두 우승한 선수는 타이거 우즈(미국) 등 13명이 있지만, 같은 코스에서 열린 2개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오른 선수는 잭 니클라우스(미국)와 피츠패트릭 두 명뿐이다.
반면 리브 골프 출전 선수들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US 오픈에 참가한 리브 골프 소속 선수(혹은 합류 예정인 선수) 13명 가운데 컷을 통과한 선수는 4명에 그쳤다. 그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는 공동 24위의 더스틴 존슨(미국·4오버파 284타)이었다. 리브 골프 출범부터 앞장선 필 미켈슨(미국)은 78-73타로 11오버파의 형편없는 스코어를 적어내고 컷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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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슨은 US 오픈 개막 전 인터뷰에서 “PGA 투어와 메이저 대회에 계속 출전하고 싶다”는 탐욕을 드러냈다. 매킬로이, 존 람(스페인) 등 PGA 투어 간판 선수들은 “우리는 돈 때문에 골프를 치지 않는다”며 날선 발언을 이어갔다. 이렇게 과열된 분위기는 자칫 US 오픈 본 경기보다는 부대 상황에 더 관심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낳았다. 그러나 막상 1라운드가 시작하자 US 오픈의 스포트라이트는 경기 그 자체를 비췄다. 매킬로이가 대회 초반부터 선두권에 오르며 이목을 집중시켰고 셰플러, 모리카와 등 스타들도 마지막까지 피츠패트릭을 위협했다. 피츠패트릭은 72번째 홀에서 완벽한 클러치 샷으로 극적인 우승을 일궜다.
1913년 더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 오픈에서 당대 최고의 프로 골퍼 해리 바든과 테드 레이(이상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한 아마추어 프랜시스 위멧(미국)의 이야기는 2005년 ‘지상 최고의 게임(The Greatest Game Ever Played)’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명승부로 기억된다. 100여 년이 지나 같은 곳에서 열린 올해 US 오픈 또한 최고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과 대회의 위상이 변치 않는 골프 경기와 메이저 대회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웠다. 리브 골프의 출현으로 이 당연한 진리가 더 두드러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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