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용기 내 마이크를 잡은 손과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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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은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에 이사온 도청팀이 위장 이사를 와서 가족들을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뤘다. 개봉 당시 1000만 관객을 넘어선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오달수와 정우, 이유비가 주연을 맡았다.
오달수는 이번 작품에서 자택에 강제 연금된 차기대선주자이자 민주주의를 꽃피우려는 의로운 정치인 의식 역을 맡아 깊이 있는 정극 연기를 펼쳤다. 이환경 감독과는 ‘7번방의 선물’ 이후 두 번째 의기투합이다.
‘이웃사촌’은 당초 2018년 2월 모든 촬영을 마치고 개봉될 계획이었지만, 같은 시기 두 명의 여성을 통해 오달수의 ‘미투’ 의혹(성추행)이 제기되면서 무기한 연기된 바 있다. 오달수는 처음에는 관련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후 공식 입장을 통해 두 피해 여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고, 활동을 중단한 채 칩거 생활에 돌입했다. 다만 그의 성추행 의혹은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경찰의 내사 종결로 인한 무혐의 처분으로 지난해 마무리됐다. 오달수는 사건 종결 후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독립영화 ‘요시찰’에 출연하며 재기를 도모했다.
오달수는 취재진들과의 인터뷰에서 “그 때가 2018년 2월이었으니 거의 2년 9개월 만”이라고 운을 떼며 “본의 아니게 관객분들에게 시간을 많이 드려 죄송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완성본을 보고 나선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후반 작업이 단단히 잘 거쳐진 느낌을 받았다”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이웃사촌’은 특히 ‘도둑들’, ‘국제시장’,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베테랑’. ‘암살’ 등 여러 영화에서 코믹과 풍자, 액션을 오가는 감초 연기를 선보였던 오달수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처음 정극 연기로 주연에 도전한 작품이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오달수는 “그동안은 주변부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이번 영화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 두 번 정도는 고사를 했었다”고 고백하며 “자신감이 많이 없었고 작품에 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캐릭터가 느꼈을 진심에 다가가고 싶었고 그 방법이 뭐가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정답은 없고 결국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더라. 성심성의껏 애를 써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과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첫 번째 시나리오 초고가 전라도 사투리 버전으로 나왔었다 사실. 저는 그 버전으로 제가 고스란히 캐릭터의 정서나 느낌을 담아 연기해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솔직히 말씀드리며 고사했다”며 “그런데 감독님이 제 말을 듣고 사투리를 고쳐 다시 시나리오를 써오셨다. 새로 나온 시나리오를 본 후 ‘그렇게까지 악을 쓰며 연기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안심했고 저 하나 때문에 시나리오를 새로 다 쓴 감독님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고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기존 ‘오달수표 코믹 연기’를 기대했을 관객들이 느낄 아쉬움에 대해선 “사실 관객분들이 얼만큼 저에게 그런 웃음 코드들을 많이 기대하고 계신지 잘 실감이 안된다”고 답하면서도 “다만 이번 영화 같은 경우는 그런 기존의 웃음기를 지워버리는 대신 영화 속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 웃음의 몫을 대신 맡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사실 태어나서 처음 맡는 역할이다. ‘변신’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작품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필모그래피, 상황들이 이 정도까지 왔으니 한 번쯤은 이런 것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도전해보고 싶다란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며 “감독님이 제게 기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도전해보고 싶은 두 사람의 마음이 섞여 이번 캐릭터가 탄생한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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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는 “‘연기가 하고 싶다’, ‘미치겠다’ 등 생각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가장 단순하고도 근육을 움직이는 노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그런 다른 일들을 찾아보자란 생각으로 큰 형의 텃밭 농사를 도와드리러 거제도를 갔다”며 “큰 형이 건축가인데 집 뒤에 큰 텃밭이 있다. 당시로선 단순 노동을 반복하자, 그러면 엉뚱한 ‘딴 생각’들이 들지 않겠지 싶었다. 거기서 고추부터 상추, 포도 등 정말 많은 작물들을 재배하며 하루를 보냈다. 식물에 물 주는데만 한 시간 반이 걸렸을 정도로 정신 없이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막걸리와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회상했다.
미투 의혹을 접했을 당시의 상황과 당시의 심경도 담담히 털어냈다.
그는 “당시 저는 충청도에서 ‘이웃사촌’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을 마무리 짓고 서울을 가니 제가 모처에서 변호사들과 계획을 짜고 있다, 논의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와 있더라”며 “왜 이렇게 이야기가 와전됐을까, 무슨 의미일까 혼란을 느꼈다. 그러다 부산 어머니 집으로 내려갔고 당시 가족들은 제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할까봐 24시간 내내 옆에 꼭 붙어있었다”고 했다.
처음 겪는 연기, 그리고 세상과의 단절은 그리움과 외로움의 시간이었다고도 고백했다. 오달수는 “저는 그저 무한 책임을 진 입장이라 관객들을 향한 욕심이 든 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오랜 시간 배우로 배우 생활을 쭉 이어오다 툭 끊기니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며 “그 전까지는 가장 길게 일을 쉰 기간이 한 두달 정도였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해 시작한 연기인데 그렇게 끊겨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외로웠고 현장이 그리웠다. 집보다 더 많이 드나들던 곳이 촬영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 세상 앞에 나서는 두려움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인터뷰 등 공식석상에 오른 심경에 대해서는 “작품과 그를 통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언론 시사 기자간담회 때 카메라 플래시를 처음 맞닥뜨리니 정말 떨리더라. 겁도 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2년 만에 완성본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을 접하고 나니 확신을 갖게 됐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아마 제가 지금까지 30~40편의 영화를 찍었을텐데 이번 작품이 그 중 가장 다르게 한 연기가 아닐까 싶다. 저 역시 낯선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이 잘 나온 것 같아 잘 선택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거둬지지 못할 대중의 불편한 시선도 인정하고 감수하겠다고 했다. 오달순수는 “분명히 인정한다. 제가 그걸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저 스크린을 통해 캐릭터를 연기하는 하나의 배우일 뿐이다. 여전히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실 분들이 계실 것 알지만, 그럼에도 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 친해져보려 이 영화를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소신을 전했다.
다만 당시 피해를 주장했던 여성들에게 전할 입장이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는 “제 입으로 그분들의 이야기와 사건, 상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주는 것이라 생각해 말을 아끼겠다”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앞으로 연기인생에 있어서의 다짐도 엿볼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지만, 세상이 뒤집어져도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게 ‘연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두려움이 많지만 전에도 그랬듯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었을 때 끌리는 작품, 좋은 감독님과 함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캐스팅을 해주신다면 기꺼이 불려 갈 겁니다. 거꾸로 가지 않고 그대로 배우 오달수로 저의 갈 길을 묵묵히 가겠습니다.”